첫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엄마 껌딱지였다. 지금은 끔찍이도 아빠를 찾는 초등학생 남자애지만, 두 돌 때까지만 해도 아빠랑 있으면 엄마 찾느라 우는 게 부지기수였다. 아이가 엄마에게 붙어있으려 해서 나는 수면을 포기하고 긴 외출을 포기하고 사회 활동도 많은 면 포기했다. 그게 꼭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래야 해서 그러기도 했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후회나 원망은 없다.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잘 떠올리지 않은지 오래다.
다만, 아이와 깊이 유착된 감정,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임을 실감하는 그 마음은 우중충 하니 우울이 안개처럼 깔린 상태였음을 기억한다. 내 자아가 아주 작은 존재에게까지 확장된 것 같은 아주 친밀한 기쁨과 더불어 매 순간 내 몸에 아주 질긴 어떤 책임이 철썩 붙어 온 존재를 잠식하는 것 같은 무거움. 나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오랜만에 그 흐린 마음의 기후를 다시 마주했다. 올 겨울,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에 올라간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아이의 이른 하교를 도맡고 학원셔틀버스에서 내리는 자리를 지켰다. 이제 2학년이 된다고 나는 내심 아이의 자립을 기대한다. 엄마 없이 학교엘 갈 수 있고 집에 돌아올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의 자립. 그런데 그것이 너무 더디게 이루어지는 것 같아 나는 마음이 피곤하고 우울하다. 아직도 내가 홀몸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내가 돌봐야 하는 작은 아이의 존재감이 너무 큰 것에 대해.
방학을 맞이해 요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아이와 오랜 시간 붙어있다. 심지어 어떤 주간엔 학원 셔틀 전화를 네 번을 받았다. 아이는 아직도 혼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다 말고 울면서 집에 도로 들어오기도 하고, 하원버스에서 내렸는데 엄마가 나오는 고 2분을 못 기다려서 겁에 질리기도 한다. 조금만 엄마가 새로운 도전으로 등을 떠밀어봐도 아이는 화들짝 놀라 여지없이 엄마 품을 파고든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더 조심성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의 고유한 감수성은 엄마의 자유를 빼앗는 족쇄가 된다. “엄마, 무서웠어.”하고 아무 위험이 없는 일상에도 금세 공포에 질리는 아이의 얼굴에, 나는 아이가 아직 얼마나 아이인지 깨닫는다. 그리고 어느새 깊은 한숨을 내쉬는 나를 본다.
아이가 엄마 곁을 떠나면 허전하고 ‘품 안의 자식’이 그리워진다는 선배 엄마들의 말이 나는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빨리 아이들이 자라 엄마를 잊었으면 한다. 우리가 도저히 하나일 수 없는 완전히 타인임이 하루빨리 자명해졌으면 한다.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을 온몸으로 흠뻑 누렸어도 그 마음은 갈수록 커진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고 싶다. 불가능할지라도 다시 아이들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벗고 가벼워지는 날을 상상한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느린 속도로 오는 듯하다. 아이는 내 기대보다 천천히 자란다. 한숨을 쉬는 것 외에, 다시 기다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또다시 생각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사실은 육아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이 시간은 시간이 흐르면 기억에서 가장 빨리 사라질 것이다. 과거를 떠올릴 때 기억이 선명한 순간은 아이가 도약하던 순간, 기저귀와 젖병을 떼거나 혼자 처음 글씨를 읽던 순간이지 그 사이사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무한 반복의 회색 같은 시간은 금방 잊힌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시혜를 가장 누리는 것은 둘째이다. 첫째에게서 오래 기다렸던 그 한 단계 도약 이전의 긴 과정이 어째서인지 둘째에게서는 잘 감지조차 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게 내게 처음이라서, 알지 못하고 가는 길이라서 그렇다.
아이가 1학년에서 2학년이 되는 시간은 길었어도, 3학년에서 6학년이 되는 시간은 빠를지도 모른다. 아이의 성장은 매일매일 조금씩이라기보단, 어느 날 엉겁결에 “엄마! 나 두 발 자전거 탔어!”하면서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에 가깝다.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은 롤러코스터처럼 그렇게 서로 다른 속도감의 시간이 마구 섞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거운 우울감이 찾아오면 나는 생각한다. 지금은 곧 지나갈, 느린 구간이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