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시간

곰소 가는 길

by 강수린

무엇이든 새롭게 경험한다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늘 가슴 뛰고 설레는 일이다.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자 할 때, 여행만큼 좋은 것도 없다. 시간이 지나 기억 속에 희미해질지라도, 여행은 잠시나마 삶의 무게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는 느긋한 쉼표가 된다. 소소한 나들이부터 여러 여행까지, 많은 여정이 스쳐 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에 파편처럼 남은 기억은 아버지와 함께했던 고향 마실길의 나들이다. 이 글은 그 여름, 아버지와 함께한 작은 여행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올해 아흔이 되셨다. 전북의 한 시골 마을, 우리가 네 남매로 자라난, 오래된 집에서 지금도 혼자 지내신다. 마당 한편에는 여전히 아름드리 팽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그 아래에는 오랜 세월을 버텨온 호랑가시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여름의 나무들은 초록빛으로 가득하고, 햇살에 반짝이며 바람에 몸을 맡긴다. 그 아래. 아버지는 낡은 의자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이 일과의 대부분이다. 아버지의 초점 잃은 눈길은 늘 어딘가 먼 곳을 향해 있다. 채송화가 만개한 담벼락엔 벌들이 윙윙대며 날아든다. 종일 매미가 울어대는 한여름, 아버지의 하루는 감잎을 줍고 잡초를 뽑는 일로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그늘 아래로 돌아와 졸기도 하고,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신다.

8월의 농가 여름은 도시보다 훨씬 뜨겁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견뎌내기조차 벅차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같은 일상을 지켜가신다. 아침 7시, 점심 12시, 저녁 6시 변함없는 식사 시간은 아버지의 하루를 구성하는 질서다. 햇빛이 마룻바닥으로 스며드는 아침이면, 오래된 선풍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감나무 위의 매미가 목청을 높인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텃밭의 채소와 담벼락의 싸리나무에 물을 듬뿍 뿌려주신다. 시원해진 그늘에 고양이 가족이 누워 쉬고, 아버지는 그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으신다. “이제는 야들이 나 밥 먹을 때 문 앞에서 기다려.” 그렇게 말씀하시며,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자랑처럼 드러내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말속에는 외로움이 배어 있음을.

자식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면서 아버지는 홀로 남았다. 부양을 거부한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지 못하신다. 큰아들 집에 하루 머물기라도 하면, 새벽부터 몰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신다. 고향의 흙, 그 공기와 냄새, 그 모든 것이 아버지의 삶이자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도시에서 30년 넘게 살며 명절이나 제사 때나 겨우 한두 번 얼굴을 뵈었다. 그래서 엄마 제사가 있는 8월이면, 핑계 삼아 며칠 더 머무르며 아버지 곁에 있으려 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아버지와 함께 고향의 길을 산책하고, 변산의 바다로 짧은 나들이를 떠난다. 아버지는 아이처럼 쉬지 않고 말씀하신다. 자식들 이야기, 옛 추억, 그리고 “나는 잘 지내고 있다”라는 말. 그 말은 마치 자신을 다독이는 주문 같고, 내겐 깊은 먹먹함으로 남는다.


아버지의 집은 면 소재지 중심에 있어 주변에 볼거리도 많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변산은 신선한 해산물이 풍부하다. 해산물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나누는 일은 내게도 큰 기쁨이다. 아버지의 식탁엔 늘 바다 내음이 가득하고, 그 맛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맞닿아 있다.

이번 여름에도 나는 팽나무 그늘에 앉아 매미 소리와 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말복이 다가오는 늦여름, 그늘에 앉아 한나절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이란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나의 소중한 여행은 아버지에게로, 그리고 나의 추억 속으로 돌아가는 귀향이다.

고향의 산과 바다, 여름의 햇살, 그리고 아버지의 미소 속에서 나는 세월의 의미를 배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흐르지만, 그 속에 머무는 마음만큼은 멈춰 있음을 느낀다.

아버지와 함께한 그 여름의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서글픈 한 페이지로 남았다.


오늘 우리가 향하는 곳은 곰소다.

곰소로 가려면 누에마을을 지나야 한다. 내변산 방향의 유유동 마을은 이름처럼 뽕나무가 많은 곳이다. 어릴 적 엄마가 번데기를 사다가 끓여주시곤 했던 그 산골 마을은, 몇 해 전부터 ‘누에마을’로 지정되어 박물관이 생기고, 뽕잎과 오디, 누에로 다양한 가공품을 만들어내며 새롭게 단장했다. 가구 수는 많지 않지만, 대부분의 주민이 뽕나무밭을 일구고 누에를 친다. 마을을 둘러싼 낮은 산과 도로의 가로수마저 온통 뽕나무다.

가로수 중 몇 그루는 마치 동화 속 ‘잭과 콩나무’처럼 하늘로 치솟을 듯 얽히고설킨 줄기에 무성한 잎을 달고 있다. 그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오디즙’, ‘누에 가루’를 파는 작은 농가들이 줄지어 서 있다. 아버지는 늘 그렇듯 낡은 지갑을 꺼내 이것저것 자식들 나눠줄 것을 사신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나는 유난히 수다스러워진다. 아버지의 지난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바다가 보이는 길로 접어든다. 오른쪽에는 구름을 머리에 인 산이, 왼쪽에는 고깃배 몇 척이 잔잔한 바다에 닿아 있다.

이 길의 절정은 해가 질 녘이다. 석양이 바다에 빠지면 하늘과 갯벌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고깃배들이 마치 갤러리의 작품처럼 고요하게 빛난다. 그렇게 곰소에 닿았다.

곰소는 염전과 젓갈로 이름난 마을이다. 해마다 9월이면 젓갈 축제가 열리고, 김장철을 앞두고 소금을 사러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버지는 젓갈을 유난히 좋아하신다. 홀로 계신 아버지를 위해 젓갈 밑반찬을 사러 어시장으로 향했다. 황석어젓, 갈치속젓, 밴댕이젓, 풀치젓… 그야말로 젓갈의 천국이다.

이곳의 젓갈은 변산 앞바다의 싱싱한 어패류와 곰소염전의 천일염이 만나 숙성된 맛이다. 짜지 않고 은근히 단맛이 돌아, 더운 여름날 찬밥에 풋고추를 썰어 넣고 한 숟갈 얹으면 그보다 좋은 한 끼가 없다. 어릴 적, 엄마의 손맛이 스며든 젓갈은 여전히 나에게 ‘집의 맛’, ‘품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는 낙지를 다져 만든 낙지 비빔 젓을, 나는 갈치속젓을 골랐다. 점심은 자연스레 게장 집으로 향했다.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시켜, “게장은 진리다”라는 우리 가족의 단골 멘트를 다시 한번 외쳤다. 변함없는 감칠맛에 웃음이 났다.

식사 후 시장 골목을 걸었다. 젓갈과 건어물, 갓 잡아 올린 생선들이 늘어서 있다. 기다란 풀잎처럼 생긴 ‘풀치’가 눈에 띄었다. 어릴 적 엄마가 자주 해주신 조림 반찬이었다. 잔가시가 많아서 싫어했지만, 지금은 그 짭조름한 맛이 오히려 그리움의 맛이 되었다. 거칠고 비린 골목, 짚으로 엮은 생선들, 투박한 나무상자들 속에는 세월의 질감이 묻어 있었다.

건어물 냄새를 뒤로하고 곰소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곰소항은 일제강점기에 수탈한 농산물과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김제·만경평야의 쌀이 이곳에서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고 한다. 아픈 역사의 자리 위로 갈매기들이 날아든다. 고깃배가 막 들어왔는지, 그들에게는 오늘이 잔칫날이다.

곰소항은 일몰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서쪽으로 지는 해가 구름 사이로 흘러내리면, 바다와 산과 하늘이 하나로 이어진다. 빨간 등대와 잔잔한 수면, 비치는 빛의 결들이 하나의 완성된 작품처럼 느껴진다.

일몰이 시작되기 전에 곰소염전으로 향했다. 염전은 바둑판 모양의 타일로 정돈되어 있었다. 하늘과 산이 소금탕 위로 비쳐 반사되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예전엔 훨씬 넓었다던 염전은 이제 소박한 규모로 남아 있다. 오래된 나무판자로 덧댄 소금 창고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염전을 뒤로하고 도로 교차점의 [슬지 제빵소] 카페에 들렀다. 여행자들이 곰소에 오면 꼭 들른다는 곳이다. 2층 야외로 올라가니 염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평일임에도 손님들로 가득했다. 창밖의 고요한 풍경과 달리, 실내는 활기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조용히 음료를 들이켰다. 거친 손끝이 떨렸다. 잠시 후, 집으로 돌아가자며 나를 재촉하신다. 차에 오르자마자 아이처럼 깊이 잠드셨다. 주름진 얼굴 위로 비친 석양빛이 마음을 아리게 했다.

한나절의 짧은 나들이, 그러나 나에게는 긴 여운이었다.

앞으로 몇 번이나 아버지와 이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을까.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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