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N잡러다. 미국에 와서 생존을 위해 밥벌이를 해야 하니 여러 일을 하는 것에 적응이 됐다. 하는 일 중 하나는, 자폐아를 도와주는 Community Facilitator 일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테라피스트처럼 전문적인 일을 하는 건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에, 범죄 이력이 없어야 하며, 약물 테스트를 통과하면 된다.
정부 기금을 받은 지역 센터(regional center)는 관련된 일을 하는 비영리단체 회사(agents)에 그 기금을 지원하고, 회사는 직원을 고용한다. 직원이 되면 여러 교육을 받은 뒤 자폐아와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같은 직장에 다녔던 직원이 내가 그 직장을 그만두자, 자폐아인 자기 딸을 돌봐달라고 했다. 소중한 딸을 믿고 맡길 사람을 찾을 수가 없어서 서비스를 6개월 이상 못 받고 있다며 부탁을 해왔다. 한번 시도나 해보자 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벌써 6년 가까이 이 일을 하고 있다.
노아(Noah)는 마일드한 자폐를 가진 만 아홉 살 남자아이다. 나는 한국어 과외도 하고 있어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으로 노아를 처음 만났다. 노아 아빠는 한국인 2세고,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왔던 노아 엄마는 독일계 스위스인이다. 외모로 말할 것 같으면, 난 세상에서 이렇게 잘생긴 아이를 본 적이 없다. 노아 누나가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노아 부모님은 노아도 이 학교에 보내고 싶어 했다. 그러니 한국어 과외를 할 수밖에 없었다. 노아 누나는 학년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으로, 따로 과외를 받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고 있었다. 노아는 킨더가튼(유치원)부터 2학년까지, 3년 동안 이중언어 반에 있다가 3학년부터는 일반 반으로 옮겨서, 지금은 한국어 과외는 받고 있지 않다. 영어로만 해도 수업 따라가기 버거운 노아가, 내용이 많이 어려워지는 3학년 교과를 한국어로도 배워야 하니, 따라가기 힘들 것 같아서 내가 부모님께 일반 반으로 옮길 것을 권했다. 노아 부모님은 노아와 함께 일해줄 것을 부탁했고, 시간이 어느 정도 맞아서 노아를 도와주게 되었다.
주로 노아를 놀이터나 공원,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 데려가 사회성 발전을 도와준다. 공공장소에서 하면 안 될 일과 해도 되는 일, 꼭 해야 하는 일을 알려준다. 노아는 간혹 엉뚱한 행동을 해서 나를 놀래키기도 하는데, 대체로 말을 잘 듣는 편이다.
어제는 놀이터에 데리고 나갔다. 좀 놀다가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데, 한 아이가 우리 곁으로 와서 인사를 했다. 이름은 맥스고 노아와 같은 반 친구라면서, 노아에게 말을 걸었다. 인사해야지, 하니 노아가 맥스한테, "하이" 하고선 바로 돌아섰다. 또 다시 맥스가 말을 걸자, 노아는 맥스 쪽으로 고개를 돌려 빙그레 웃더니 다시 시선을 딴 곳으로 두면서 과자를 먹었다. 그 아이에게 노아 행동에 대해 변명하기 위해 노아가 자폐아라는 걸 알고 있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이미 자기는 알고 있다면서 이해한다고 했다. 자기 학교 선생님과 반 친구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나는 잘했네, 그랬구나 하면서 맞장구를 쳐줬다. 그러다가 빠이~ 하고 우리 곁을 떠나 자기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노아는 비로소 떠나가는 그 아이를 응시했다. 멀어지는 맥스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노아에게 물었다. 이 아이를 아냐고, 이름이 뭐냐고. 노아는 자기 반 친구 맥스라며 스펠링까지 댄다. 좋은 친구냐고 묻자, 그렇다고 한다.
나는 안다. 노아가 맥스와 얼마나 놀고 싶었을지, 일부러 자기에게 다가와 줘서 얼마나 좋았을지. 우리를 등지고 다른 곳을 응시하며 과자만 먹고 있던 노아의 신경은 모두 그 친구에게 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노아는 또래와 같이 노는 법을 모른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소통 능력이 노아에겐 없다. 그저 빙그레 웃고 등을 돌리고 어색하게 과자만 먹는... 그게 맥스에 대한 마음의 표현이다.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뭔가가 발명되면 좋겠다는 아이 같은 생각을 한다. 그 장치에 on and off 기능이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켜고 소통을 위해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노아 같은 아이들이 맥스 같은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세상이 어떤 식으로든 와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