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회사에 오는 날, 나는 출산 전의 정장 차림으로 하 팀장의 자리를 찾아갔다. 전략 프로젝트팀이라는 말에 심장이 뛰었지만, 막상 도착하니 회의가 길어져서 다시 늦을 것 같다는 전갈만 받았다.
긴장 속에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주변을 둘러보니, 분주하게 문서를 만들고 업무 통화를 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그랬었는데.' 나는 그들의 치열한 모습에서 잠시 내가 잊고 지냈던 과거의 일잘러 한여름을 떠올렸다. 그들 틈에서 나는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마침내 하 팀장이 나타났다. 그는 신속하게 면담을 진행했지만, 그 방식은 마치 면접관 같았다.
"한여름 씨, 고과가 쭉 좋다가 마지막에 'B/B'를 받았던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나는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설명했다. "직전 프로젝트 리더의 판단이었습니다. 프로젝트 중도 발령으로 마무리를 못했고 그 결과로 받아들였습니다."
곧바로 날아온 질문들은 핵심을 찔렀다.
"애기는 누가 봐줄 사람 있습니까? 복직하면 시도 때도 없이 야근하고 해외출장 갈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해외출장 갈 수 있습니까?"
나는 마치 신입사원 면접장에 온 것처럼 긴장하며 대답했다. "복직하면 아이는 곧 어린이집에 나갈 예정이고, 남편과 철저히 분담하여 육아를 할 예정입니다. 해외 출장도 물론 가능합니다."
하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지금 조직개편 중이라 한여름 씨를 후보로 생각 중인데, 아직 확정은 아닙니다. 발령 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후보'라는 단어에 나의 기대감은 절반으로 꺾였다. 알겠다고 답하고 돌아섰지만,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복도에서 핸드폰을 들어 김 책임에게 연락했다.
김 책임님은 퇴근 후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녀를 만나자마자 나는 하 팀장과의 면담 내용을 털어놓았다. 김 책임은 나에게 충격적인 정보를 전달했다.
"여름 씨, 내가 팀장 회의 자료를 봤는데... 당신 복직을 앞두고 팀장들 간에 언성이 오갔대. '지원부서에 두기에는 한여름 활용도가 너무 높아서 낭비 같다', '프로젝트팀에 배치하기에는 애 엄마는 불편하다', '서로 안받는다'는 논쟁이 붙었답니다."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나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나의 '엄마'라는 정체성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김 책임은 씁쓸하게 덧붙였다. "결국 하 팀장이 당신을 만나본 이유도, '지금 우리 팀이 충원이 급하니 아쉬운 대로 만나보겠다'는 결론 때문이었대요. 그리고 하 팀장은 신임 팀장인데, 얼마 전 말실수로 실장님 눈 밖에 나서 이번에 성과로 빛을 보고 싶어 하는 야망이 있는 팀장이에요. 당신을 뽑아 쓸지, 아니면 '불안 요소'로 치부할지 재고 있는 거예요."
"아쉬운 대로?" 나는 가슴에 커다란 멍이 드는 기분이었다. 회사에 헌신했던 지난날의 경력, 치열했던 나의 삶이 '아쉬운 대로'라는 단어 하나로 압축되는 것 같았다. 복직 후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 뻔했다.
나는 김 책임에게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격과 혼란 속에 발을 내디딘 회사 밖은, 이미 해가 진 후였다.
'그래도 정신 차리자. 아쉬운 대로든 뭐든, 기회는 기회야. 아이 어린이집 입학이랑 적응만 완벽하면 된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서울의 겨울바람이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나의 복직 전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