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 뜻밖의 배치

by 제제

복직을 앞두고 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이재의 완벽한 어린이집 적응과 믿을 수 있는 이모님 구하기에 모든 신경을 쏟았다.
​이재가 다닐 어린이집은 길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아기를 안고 큰길을 건너야 하는 매일의 부담이 있었지만, 출근길 동선에 맞춰 이재를 맡기고 바로 회사로 향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장점 하나만 보고 결정했다.
​이재의 적응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낮잠 시간 전까지만 머무르는 방식으로 천천히 진행했는데, 이재가 늘 안고 자던 애착 수건을 함께 보낸 덕분에 낯선 환경에서도 울지 않고 잘 지내주었다. 이재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은 나의 귀한 해방구였다. 나는 굶었던 밥을 따뜻하게 챙겨 먹었고, 미용실에 가서 엉망이었던 단발머리를 다듬으며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모님 구하기는 난항이었다. 복직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절망했다. 이때 나를 구원한 건, 이재 어린이집 친구 엄마였다. 그녀는 동네 육아 네트워크를 통해 어린이집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시는 베테랑 이모님을 소개해 주었다. 이모님은 흔쾌히 아이를 맡아주셨고, 나는 그제야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안도감에 숨을 쉴 수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회사 인사팀에서 최종 통보가 왔다.
​"한여름 씨, 복직하시면 소속이 변경될 예정입니다. 실장님 직속팀으로 발령 나셨어요."
​실장님 직속팀. 그곳은 실장님의 스케줄 관리, 의전, 그리고 각종 대외·내부 관리 보고서 작성을 전담하는 비서팀이었다. 10년 가까이 쌓아 올렸던 나의 프로젝트 기획 커리어가 하루아침에 비서 업무로 대체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아쉬운 대로'라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래도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임원을 모시면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어. 이것을 기회 삼아 언젠가는 본업으로 돌아갈 거야.' 나는 이 굴욕적인 배치를 '닭엄마'가 되기 위한 나의 전략적인 웅크림이라고 믿기로 했다.

​다음 주 월요일, 나는 이모님에게 이재를 맡기고 오랜만에 그리고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복직 첫날, 나는 곧바로 실장실로 불려 들어갔다.
​박 실장님은 냉철해 보이는 인상에, 책상 위에는 서류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건조하게 물었다.
​"한여름 씨, 잘 쉬고 왔습니까?"
​'쉬러 간 건 아닌데, 이 출산 휴가 자체가 나의 능력을 깎아내리는 휴직이었는데.'

나는 속으로 삼키고 고개를 숙여 "네,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박 실장님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일은 문서 작업이 워낙 많고, 위로 올라가는 보고용 자료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문장 구성이나 표현은 고도의 센스 있게 잘 써야 합니다. 대외비가 많으니, 제가 검토한 자료는 저 외에는 비밀 유지 철저하게 해 주셔야 합니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는 나의 대답을 들을 틈도 주지 않고 "업무 숙지하십시오."라며 냉철하게 자리를 떴다.
​나는 지시받은 자리에 앉아 새 업무를 파악하려는데, 복도에서 오며 가며 인사하던 최 선임이 나를 빈 회의실로 조용히 데리고 갔다.
​최 선임님은 주변을 살피더니 나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속삭였다.
​"한여름 씨, 박 실장님은 당신 휴직 후에 오신 분이에요. 정치적 배경 없이 전문성 하나로만 올라온 분이죠. 그런데 당신 복직 배치 건으로 팀장들 간에 논쟁이 심했는데, 아무도 당신을 안 받겠다고 했대요. 애 엄마는 불편하다는 거죠. 그 와중에 박 실장님이 직접 '데리고 해보겠다'고 하셨다고 해요."
​도대체 왜? 나는 혼란스러웠다. 박 실장님처럼 냉철한 분이 왜 '불안 요소'인 나를 자진해서 받았을까. 나의 능력 때문일까? 아니면 또 다른 함정일까.
​최 선임은 불안하게 속삭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잘 버텨야 할 거예요. 박 실장님 무섭기로 소문났거든요."
​박 실장님의 냉철한 눈빛, 동료들의 불편한 시선, 그리고 나를 둘러싼 알 수 없는 정치적 역학 관계. 나의 복직은 기대가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고독한 전쟁이었다. 나는 그 차가운 현실 속에서 '닭엄마'의 생존 전략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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