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실장님 직속팀으로 발령받은 뒤, 나의 복직 생활은 문장과의 전쟁 그 자체였다. 실장님은 역시나 대외 보고용 문건의 문장 하나하나에 대한 구성과 흐름을 매우 빠르게 파악했다. 마치 냉혹한 '빨간 펜 선생님'처럼, 정말로 붉은색 펜을 들고 내가 제출하는 보고서 초안마다 빼곡하게 수정 사항을 표시했다.
하루 종일 고민해서 작성했던 문장들의 보고서는 실장님의 손을 거치는 단 몇 분 만에 붉은색 글씨로 빼곡하게 뒤덮이곤 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다듬고 또 다듬어서 보고해야 겨우 통과하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퇴근 시간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이대로라면 이재에게도, 나의 체력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나는 결심했다. 그동안 수정본들 속에 숨겨져 보이지 않던 실장님의 '언어 패턴'을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하나의 데이터로 분석했다.
- 반복되는 문장과 수식어구를 극도로 싫어함.
- 길고 늘어지는 복문(複文)은 가차 없이 잘라냄.
- 전체적인 논리적 밸런스와 핵심 전달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함.
나는 이 분석 결과를 나의 상반기 성과 보고 및 하반기 추진 계획 보고서 작성에 즉시 적용했다.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제거하고, 문장의 호흡을 짧게 끊었으며, 실장님이 지향하는 냉철하고 간결한 방향대로 자료를 작성했다.
보고서를 완료하고 늦게 퇴근한 다음 날 아침. 자리에 앉자마자 실장님 방으로 호출되었다.
"어젯밤에 메일 온 거 확인했는데, 몇 가지만 정리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획팀 차 팀장에게 이 부분만 정리해서 보내라고 하세요."
여전히 실장님의 말투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바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은 사실상 이 냉철한 분의 최상급 칭찬이었기 때문이다. 수정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은, 나의 전략이 통했다는 증거였다.
나는 여기에 더해 실장님의 개인적인 성향도 파악했다. 박 실장님이 비염이 심하다는 것을 눈치챈 후, 비염에 좋다는 따뜻한 차와 목에 좋은 간식 등을 챙겨 늘 아침에 실장님 테이블에 미리 올려놓았다.
실장님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지만, 내가 퇴근하기 전 슬쩍 확인해 보면 늘 테이블 위에 있던 것들이 깨끗하게 다 비워져 있는 것을 체크할 수 있었다.
칭찬은 거의 들어본 적 없지만, 나는 그분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분에게 맞춤 전문 비서로서 빠르게 변모하고 있었다. 실수와 수정 횟수가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회사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데, 이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 죄송한데, 저 이 일 그만둬야 될 것 같아요."
나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봤더니, 이모님은 남편분이 하시던 일에 갑자기 손이 부족해져 당장 내일부터 남편을 도와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이 일을 못하겠어요. 당장 내일부터는 못 나옵니다."
나는 불이 나게 업무를 마무리하고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한 뒤 집으로 달려갔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이재는 아직 저녁 식사를 먹지도 못하고 거실 한쪽에 앉아 칭얼거리고 있었다. 이모님은 이미 외투까지 다 챙겨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다리를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 맘마! 맘마!"
아이의 울음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지는 와중에, 이모님은 나에게 차가운 한 마디만을 남겼다.
"월급 정리해서 보내주세요."
그리고는 현관문으로 황급히 사라지셨다.
어떻게 이렇게, '당장 내일부터 못 나온다'고 하다니. 나는 텅 빈 현관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서 있었다. 겨우 회사 업무에 적응하고 숨통이 트이나 싶었는데, 이제 아이를 봐줄 사람이 사라졌다.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닭엄마 생존 전략'에 가장 큰 균열이 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