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 오랜 친구의 고민

by 제제

가정과 회사, 두 전선에서 치열한 전략을 전개하던 어느 날, 대학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유아름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오랜만에 그녀와 조용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아름이의 눈가는 피로하고 불안해 보였다.
​그녀는 오래 사귀었던 선배와의 결혼을 앞두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여름아, 너는 이미 결혼해 봤잖아. 솔직히 말해줘. 결혼... 정말 '할 만한' 거니?"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는 남편의 노력과 시댁의 차별, 그리고 내가 던진 이혼 서류가 교차했다. 나는 진실을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말을 골랐다. 결혼은 사랑을 넘어선 시스템 리스크라고.
​"아름아, 결혼은 한 사람과의 관계를 넘어, 그와 관련된 모든 시스템과 주변 인물들을 네가 모두 감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거더라.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수많은 '관계의 굴레'가 존재해."
​그리고 나는 내가 겪었던 시댁의 노골적인 차별과 그로 인해 가정 내에 불어닥쳤던 몇 년간의 폭풍 같은 이야기를 감정을 배제하고 간략하게 털어놓았다. 아름이는 충격받은 듯 얼어붙었다.

​잠시 후, 아름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상황은 내가 예상했던 단순한 연애 고민이 아니었다.
​"사실... 얼마 전에 산부인과에 갔어.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내 난소 기능이 너무 빨리 저하되고 있다고. 조금 있으면 배란이 잘 안 될 것 같다고. 거의 조기 폐경 진단이나 마찬가지래."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불규칙한 생활 패턴이 불러온 결과에 대해 자책했다.
​"나는... 평범하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이재처럼 예쁜 아이를 키우는 게 유일한 꿈이었어. 그런데 내 건강이 그걸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식에... 너무 절망했어. 여름아, 나에게 시간이 없어. 그래서 사실 지금부터라도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준비하려고 진지하게 고민 중이야."
​친구의 눈물과 '시간이 없다'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 나는 더 이상 나의 쓰라린 경험을 '경고'로 내세울 수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평범한 삶'을 얻기 위해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이 곧 멈춰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압도했다.
​"아름아... 네 결정이 맞아. 네가 원하는 평범한 삶을 위해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야 해. 네가 행복할 수 있도록, 아이를 갖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도록 내가 진심으로 응원하고 도울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마치 얼음을 깨고 나온 듯한 상쾌함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아름이의 절망은 나에게 결혼이 가진 삶의 냉정한 무게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결혼은 곧 생존이었다. 아름이에게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물학적 생존이었고, 나에게는 '내 아이가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이라는 사회적 생존이었다.
​나는 이재를 낳았고, 남편의 노력으로 가정의 균열을 봉합할 기회를 얻었다. 아름이의 상황은 내가 가진 현재의 삶과 능력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역설적으로 깨닫게 했다.
​나는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한 무기가 필요했다. 남편의 변화는 감사했지만, 시댁의 구조적인 차별 앞에서 그는 여전히 취약했다. 나정식의 방패가 무너지는 순간, 나는 다시 그 차별의 한가운데로 던져질 터였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결심했다. 나를 지키는 것은 결국 나의 능력뿐이다.
​'내가 회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 누구도 나의 가치를 쉽게 평가절하할 수 없는 전문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것.' 그것만이 불안한 가정을 지키고, 내 아이 이재가 '차별받는 엄마'를 보고 자라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내가 더 많은 힘과 통제권을 가져야만, 시댁의 불합리한 시스템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영원히 격리시킬 수 있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박 실장님께 역제안을 던져, 나의 전문성이라는 방패를 공고히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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