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회사, 두 전선에서 치열한 전략을 전개하던 어느 날, 대학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유아름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오랜만에 그녀와 조용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아름이의 눈가는 피로하고 불안해 보였다.
그녀는 오래 사귀었던 선배와의 결혼을 앞두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여름아, 너는 이미 결혼해 봤잖아. 솔직히 말해줘. 결혼... 정말 '할 만한' 거니?"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는 남편의 노력과 시댁의 차별, 그리고 내가 던진 이혼 서류가 교차했다. 나는 진실을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말을 골랐다. 결혼은 사랑을 넘어선 시스템 리스크라고.
"아름아, 결혼은 한 사람과의 관계를 넘어, 그와 관련된 모든 시스템과 주변 인물들을 네가 모두 감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거더라.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수많은 '관계의 굴레'가 존재해."
그리고 나는 내가 겪었던 시댁의 노골적인 차별과 그로 인해 가정 내에 불어닥쳤던 몇 년간의 폭풍 같은 이야기를 감정을 배제하고 간략하게 털어놓았다. 아름이는 충격받은 듯 얼어붙었다.
잠시 후, 아름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상황은 내가 예상했던 단순한 연애 고민이 아니었다.
"사실... 얼마 전에 산부인과에 갔어.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내 난소 기능이 너무 빨리 저하되고 있다고. 조금 있으면 배란이 잘 안 될 것 같다고. 거의 조기 폐경 진단이나 마찬가지래."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불규칙한 생활 패턴이 불러온 결과에 대해 자책했다.
"나는... 평범하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이재처럼 예쁜 아이를 키우는 게 유일한 꿈이었어. 그런데 내 건강이 그걸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식에... 너무 절망했어. 여름아, 나에게 시간이 없어. 그래서 사실 지금부터라도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준비하려고 진지하게 고민 중이야."
친구의 눈물과 '시간이 없다'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 나는 더 이상 나의 쓰라린 경험을 '경고'로 내세울 수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평범한 삶'을 얻기 위해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이 곧 멈춰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압도했다.
"아름아... 네 결정이 맞아. 네가 원하는 평범한 삶을 위해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야 해. 네가 행복할 수 있도록, 아이를 갖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도록 내가 진심으로 응원하고 도울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마치 얼음을 깨고 나온 듯한 상쾌함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아름이의 절망은 나에게 결혼이 가진 삶의 냉정한 무게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결혼은 곧 생존이었다. 아름이에게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물학적 생존이었고, 나에게는 '내 아이가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이라는 사회적 생존이었다.
나는 이재를 낳았고, 남편의 노력으로 가정의 균열을 봉합할 기회를 얻었다. 아름이의 상황은 내가 가진 현재의 삶과 능력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역설적으로 깨닫게 했다.
나는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한 무기가 필요했다. 남편의 변화는 감사했지만, 시댁의 구조적인 차별 앞에서 그는 여전히 취약했다. 나정식의 방패가 무너지는 순간, 나는 다시 그 차별의 한가운데로 던져질 터였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결심했다. 나를 지키는 것은 결국 나의 능력뿐이다.
'내가 회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 누구도 나의 가치를 쉽게 평가절하할 수 없는 전문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것.' 그것만이 불안한 가정을 지키고, 내 아이 이재가 '차별받는 엄마'를 보고 자라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내가 더 많은 힘과 통제권을 가져야만, 시댁의 불합리한 시스템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영원히 격리시킬 수 있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박 실장님께 역제안을 던져, 나의 전문성이라는 방패를 공고히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