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밤샘 끝에 간신히 얻어낸 귀국이었다. 나의 첫 크리스마스는 나정식과의 로맨스가 아닌, 시부모님과의 ‘시월드 의무’로 셋업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신혼집에서 시부모님을 맞이한 나는, 거실 한쪽에 쌓인 이탈리아 캐리어 위로 불안함을 꾹 눌러 담았다.
크리스마스 당일, 오전부터 현관이 떠들썩했다. 시부모님은 손수 당일 뜬 횟감, 통영 굴 한 상자, 그리고 김장 김치를 아이스박스에 가득 담아 오셨다. 그리고 나정식이 연락을 드려 모셨다는 미혼의 아주버님까지 합세했다.
신혼집은 순식간에 잔칫집으로 변했다. 시아버님과 아주버님은 온화한 표정으로 횟감을 드셨고, 시어머니는 주방을 진두지휘하며 요리를 하셨다.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는 예상외로 조용히 흘러가는 듯했다. '그래, 이렇게 평온하게 하룻밤만 잘 넘기자.' 나는 안심하려 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결코 평온하게 지나가지 않으셨다. 식사가 끝난 후, 시어머니는 자연스럽게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정식이 급하게 사놓은 마트 김치를 발견하셨다.
“여름아.”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잔치상에서의 그 서늘한 목소리.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사 먹는 김치를 넣어두니? 이런 김치를 먹고사냐. 쯧쯧. 나는 네가 똑똑해서 살림도 잘할 줄 알았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출장 때문에 이탈리아 캐리어조차 못 풀었는데! 잔치상 경고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여기 냉장고며, 싱크대 살림이 이게 뭐니. 정신없어서 뭘 찾을 수가 있어야지. 네가 바빠서 그렇겠지만, 그래도 부엌살림은 정리해야지.”
나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버틸 수 없었다.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고, 최대한 예의 바르게 위기를 모면했다.
"어머님, 죄송해요. 출장이 너무 정신없이 이어져서 정말 정리를 못 했어요. 다음부터는... 제가 더 신경 쓰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급한 일이 없음에도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시부모님 얼굴을 마주하고 또 다른 지적을 들을 자신이 없었다.
아침 7시, 회사에 도착했을 때 사무실은 연말을 즐기려는 사람들 덕분에 텅 비어 있었고, 중앙난방도 꺼져 공기마저 차가웠다. 나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전날 설쳤던 잠을 1시간 정도 잤다. 일어나 회사 앞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우유로 아침을 때우고 차분히 중국 프로젝트 자료를 정리했다.
'차라리 잘됐다. 여기가 내 안식처다.'
나는 익숙한 일에 몰두하며 평온을 되찾았다.
오후가 되자, 나정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나 이제 막 부모님 KTX 태워 드리고 오는 길이야. 잘 가셨어! 고생했어 여보."
전쟁이 끝난 것 같았다. 나는 신이 나서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나정식과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저녁도 먹으며 제대로 된 신혼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다. 나는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 이상했다.
특히 부엌이!
싱크대 수납장 내용물 배치가 싹 달라져 있었다. 내 취향대로 대충 넣어두었던 양념통들은 가지런히 정렬되었고, 냉장고 속 식재료들은 마치 군대 열병식처럼 각이 잡혀 있었다.
“어? 부엌이 왜 이래?” 내가 당황해서 묻자, 나정식은 자랑스럽다는 듯 뒤이어 이야기를 했다.
"아, 어머니가 여보 출근하고 나서 오전 내내 정리하셨어. 어제 살림 지적하시더니, 깔끔하게 다 해주고 가셨다네! 어머니가 손이 빠르시지?"
그 순간, 나는 냉장고 손잡이를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터뜨렸다.
"이건 아니야! 정식아, 이게 내가 꿈꾼 결혼은 아니라고!"
나는 소리쳤다. 내 영역이, 나의 공간이, 나의 병아리 같은 신혼살림이 존중받지 못하고 침범당했다는 절망감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정식은 갑작스러운 나의 통곡에 상황 파악이 안 되었는지 놀라서 눈만 끔벅였다.
나는 나정식을 부여잡고 흐느꼈다.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왜! 왜 내 허락도 없이! 내가 바빠서 못 풀었던 이탈리아 캐리어가 아직도 저기 있는데, 왜 내 영역을 이렇게...!!"
흐르는 눈물은 그동안의 잔치상에서 억지로 삼켰던 눈물, 그리고 결혼이란 이름으로 짓눌린 나의 자존감이 뒤섞여 폭발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