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제는 괜찮았으면 한다...
내가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같은과 동기가 찾아온적이 있었다.
장난끼 다분했던 쾌활했던 그 친구의 모습은
여전했었어.
그런데 뭔가 모르게 무거운 느낌도 들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만 들렸었지 그런 녀석이 반가운마음에
마음에 안부를 물었는데....
녀석은 의자에 앉아 벽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어. 여자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었다..
하늘나라로 간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결혼을 한달 앞두고 여행을 떠났다가 잠이든 채 심장마비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고 했어.
나는 그저 그 옆에 앉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괜히 위로의 말을 꺼냈다가
그의 마음 어딘가를 더 건드릴까봐 겁이 났기도했고,
그 친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단어나 문장
또는 행동조차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같이 조용히 있었다.
한참 뒤에야 녀석이 입을 열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그냥 멍해, 꿈꾸고 있는 것 같아....
그 몇 마디에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그 말을 하면서 녀석의 눈은 붉었고,
목도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마디 가 끝난후 친구는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찬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들었고,
겨울 햇빛은 유리창을 타고 서늘하게 흘러내렸다.
그날따라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자켓 주머니에 두 손을 깊숙이 찔러 넣고,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걷는 그 뒷모습이
어찌나 서글프게 보이던지,
그 작은 등이 세상 전체의 슬픔을 짊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교수님이었다.
교수님은 말없이 창가에 서서
그 아이가 멀어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은 단단했지만, 그 속엔 깊은 연민이 비쳤다.
그리고 한참 후,
그 뒷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교수님은 천천히 나를 돌아보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다만 약간 벌어진 입과 눈빛은
“쟤… 이제 어떻게 살아가니….”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그말은 질문이 아니라,
세상에 던진 탄식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걸
서로가 알고 있었으니까.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생각한다.
삶이라는 게 어쩌면
그렇게 무거운 겨울을 통과하는 일 아닐까 하고.
우리는 모두 언젠가 그런 무거운 날을 맞이하게 된다 .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바람을 맞으며 어깨를 움츠린 채,
겨울의 한복판을 걸어가야 하는 날 말이다.
교수님은 잠시뒤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일찍 돌아가라...
그런 마음으로는 뭔가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발걸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그 친구처럼 지쳐 보였다.
사람이란 참 이상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새 그 슬픔의 씨앗이 내 안에도 옮겨와
조용히 자리를 잡는 것 같다. 그리고 더 자라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머물러. 딱 그만큼 오래도록 머물러있어.
나는 그날 이후로,
누군가의 뒷모습을 쉽게 잊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추운 계절에 혼자 걷는 사람의 어깨를 보면
그때의 그 친구가 떠올라.
겨울은 언제나 그를 닮아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가끔은 그날 교수님이 눈빛으로 말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쟤 이제 어떻게 살아가니…”
그 말은 여전히 내 안에서 울려 퍼진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내게는 삶을 묻는 질문처럼 들린다.
‘너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니?’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아직도 잠시 멈칫한다.
누군가의 슬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일
그게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대답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