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참아내야 할때...
어릴적 친구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장난끼 많았던 친구는 어느세 의젓한 중년이 되어있기도 하고
모범적이었던 친구가 삶의 밑바닥에서 허우적 거리기도 하며
자신감 없었던 친구가 샘이날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리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친구는 마음이 아련할 정도로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사람이 되어있기도 하다.
나보다 1살어린 같은동네에 살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집안 형편도 좋지 못했고, 어른들의 사랑을 잘 받지도 못했다.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나의 주장이자만, 암튼 중학교 2학년이 된지 얼마되지 않아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도 몇 년후 어머니께서 부동산으로 성공하신 이후 형편이 조금은 나아진 듯 보였다.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보고대학까지 진학하고 이후 우리는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몇 년에 한번씩 안부만 주고 받았지만...
어느날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15년후 그 아이를 다시 본곳은
알코올 중독 병원이었다.
친구에게 연락을 받고 간 병원에서 대기를 한후 안내를 받아
올라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알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몰골은 엉망이었고, 술에 취한 듯 취하지 않은 듯 뭐가 이상했다.
간호사의 말로는 알코올 중독 중증환자의 경우 뇌가 축소되서
정상적인 사고작용이나 일반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 할때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조심스레 병실 문을 열었다.
희미한 조명 아래,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느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오빠… 나 알아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목소리 속에는 웃음과 울음이 뒤섞여 있었다.
손등에는 주사 바늘 자국이 가득했고,
얼굴에는 세월보다 더 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 친구를 와락 안아주었다.
“괜찮아, 나 이제 괜찮아.”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이 얼마나 오래된 거짓인지 나는 알았다.
그 말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주문처럼 들렸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말했다.
“가끔 생각나… 그때 우리 골목길…
오빠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던 소리…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웃을 수 있었을까.”
그녀의 눈빛은 마치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숨 하나가
내 마음 어딘가를 천천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윽고 잠시동안 정신이 돌아온 듯 했다.
마치 무엇에 씌였다가 잠시 돌아온 사람처럼
멀쩡했다.
하지만 그녀의 슬픈 눈빛은 멍하니 벽을 바라보곤
이렇게 말했다.
“나는 행복하게 살수 없을 것 같아...
면회 시간은 너무 짧았다.
나가려는데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혹시, 나 냄새 나?”
나는 고개를 세게 저었다.
“아니, 하나도 안 나. 예전 그대로야.”
그녀는 작게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 선명해서,
나는 그 순간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오빠....나 오천원만....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그 말엔 간절함보다
어딘가 익숙한 부끄러움이 섞여 있었다.
“술 안 사마실게 오천원만…”
그녀는 끝을 흐렸다.
나는 지갑을 꺼내다 말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동자 깊숙이 어린 시절의 그 아이가 있었다.
머리핀을 하고 장난스럽고 환하게 웃던 미소
그리고 늘 나를 따라다니던 그 발소리.
나는 결국 돈을 건네지 못했다.
대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작게 중얼거렸다.
“오빠는 늘 착했어.”
그 한마디가 내 가슴에 박혔다.
마치 용서처럼,
혹은 오래된 인연의 끝자락처럼.
눈물이 쏟아지려 했지만, 절대 울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눈물을 보이는 것은
자신 때문에 또 누군가가 무너진다는
죄책감으로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호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결핍과
나아진 형편은
그녀에게 영혼의 양식이 아닌
분별없는 폭식을 가져왔다.
그녀는 무언가를 채우려 애썻고
그렇게 독배가 든 술잔을 안식처럼 여겼을 것이다.
결국 영혼의 굶주림 그녀를 그렇게 망가트렸다.
그래서 때로는 이 세상이 미울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