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에 대한 증명
알제리에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국으로 유학준비를 하는 중이었는데,
면접서류가 통과되지 못했다고 했다.
이유인즉,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지 못해서 라고 했다.
그게 무슨말이냐 하면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린시절
멀리 떠났고, 이혼도 하지 않은채 연락두절이기에
법률상 서로 이혼을 하려면 합의가 되어야 하는데 그 아버지란
사람의 행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증명을 해야하는데
그걸 증명해 줄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이었다.
말은 단순했지만,
그 말 속에는 한 사람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현실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대학원 입학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해서 탈락한 것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여권도 있고,
학위도 있어.
그런데 서류상으로는 ‘누구의 딸인지’를 증명할 수가 없대.
그 사람의 이름이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게 무슨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린가 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누군가의 자식’이 되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잔인하게 다가왔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남은 시간은 36시간 이었다.
그건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문제”였다.
시차도 문제였다.
서류에 대한 확인을 하려면 한국과 시차또한 정 반대였다.
즉시 여러 대사관과 국제법 관련 기관에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모두 같았다.
“가족관계 증명서가 없으면 신분 증명이 불가능합니다.”
단 한 줄의 문장이
그녀의 모든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녀는 끝내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의 딸이기 전에,
그냥 나로서 살고 싶을 뿐이야.”
그말을 들었을 때, 세상에 대한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그만 이렇게 말했다.
“그만해! 감정 앞 세우지마!
나는 조금 언성을 높였다.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이것은 법과 절차상의 문제였다.
그말을 듣고 그녀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미안했지만 어찌되었건 급한불을 꺼야했다.
그날 밤,
나는 그녀에게 했던 말이 미안했다.
나에게는 법과 절차상의 문제였을지 몰라도
그녀에게는 ”자신이 세상에 존재함“에 대한 싸움이었을지도 몰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문장을 노트 한쪽에 적어두었다.
“사람이란, 누군가의 증명 안에 갇혀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녀의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문제점을 찾아 뛰어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확실해졌다.
이건 단순히 한 사람의 서류를 돕는 일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향한 싸움이라는 걸.
다행히도 나는 대학원시절 조교로 2년간 있었기에
학교 행정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교육청 담당자와 관련 대학 행정실과 교무처에 전화를 걸었다.
이제부터는 법과 절차의 싸움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지키기 위한 주장을 해야했다.
한 인간이 세상 앞에서 ‘존재할 권리’를 되찾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이틀간 마음을 조리며 전화를 기다리고 설득을하고
이곳저곳에서 거의 빌다시피 항의아닌 항의로서 문제를 해결 해야했다.
그렇게 30시간이 지난 뒤, 대학 측은 예외적으로 그녀에게 면접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녀는 비록 완벽한 서류를 갖추지 못했지만,
그동안 쌓아온 연구와 노력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작은 희망을 품었다.
‘이제 세상이 조금은 사람의 사정을 이해해주는구나’ 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가 흘렸을 눈물보다,
그 문장이 가진 냉정함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다음해에 반드시 다시 지원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게 일년뒤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그녀가 합격했다는 메시지였다.
내가 잊은 투쟁을
그녀 혼자 계속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증명” 해냈다.
이번엔 서류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증거가 되어 세상을 설득했다.
그녀의 이름은 이제 기록 속 한 줄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쓴 문장 속에 남게 되었다.
그녀의 합격 소식을 들은 날,
나는 홀로 밤거리를 산책중이었다.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건 묘한 벅참이었다.
법은 그녀를 의심했지만,
삶은 끝내 그녀를 증명해주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있는 학교에 합격을 한 것 보다
자신에 대한 “존재권”을 얻었기 때문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