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대한 착오를 일으키는 것들

10년 벌었다...

by 이건

인간의 수명은 보통 유전적인 생물학적 이유로

그 기간이 정해진다. 그리고 그 기간이 되면 어떠한 이유로든 삶을 마감하게 된다.

건강하게 살기위해 그리고 오래 살기위해서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기위해서 장바구니에 신선한 야채와 좋은

식재료를 담아낸다.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문장은 사실 내가 스스로에게 해야 할 말이었다.

그동안 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살았다. 마치 누군가 내 인생 시계를 조금 빠르게 감아둔 것처럼.


그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 집안은 대체로 70대 초반에 생을 마감하신 분들이 많았다.

나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우리 집은 70이 넘기기 힘들어.”

그 말이 어린 시절부터 귓속에 박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은근히 조급했다.

30대에는 뭔가를 이뤄야 하고,

40대에는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인생의 종착역이 일찍 온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가족 모임 자리에서

엄마가 무심코 말했다.

“야, 무슨 소리야. 우리 집안 다 80대 중반 넘게 살았어.”

순간 나는 숟가락을 들던 손이 멈췄다.

“뭐라고요?”

그때 들었던 충격은 거의 족보급 반전이었다.


그럼 엄마는?

외할버지는 일찍 재혼하셨고, 사고로 돌아가셨기에

그부분은 알수 없었다.

그러자 엄마왈

“나랑 70중반인 너네 이모 지금도 펄펄 나는거 보면 모르겠냐?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허탈했다.

“그럼… 나 그동안 왜 이렇게 급하게 살았지?”

“내가 그렇게 조급해했던 건,

단순히 ‘집안 유전’의 오해였던 건가?”

그 생각이 들자,

그동안의 불안이 다 허무하게 느껴졌다.


사람이란 참 묘하다.

어떤 근거 없는 믿음 하나로

자신의 인생 리듬을 정해버린다.

나는 마치 마감일이 70으로 정해진 인생 계약서를 믿고,

그때까지 모든 걸 끝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셈이다.


심지어 40대가 되자 진짜 시계가 빨리 가는 것 같았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볼 때마다,

의사 선생님이 “괜찮습니다” 해도

나는 속으로 “이제 곧 시작이겠지…” 하며 괜히 불안해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건 유전이 아니라 ‘습관적인 비관’이었다.

우리 집안이 짧게 산 게 아니라,

‘짧게 살았다고 생각하고 산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믿음이

가족의 식습관과 마음 습관을 동시에 지배던 과거

늘 긴장하며 살고,

마음의 여유를 사치로 여기던 삶.


그런데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달라졌다.

“80대 중반까지 산다”는 말을 듣고 나서

갑자기 시간이 늘어난 느낌이었다.

그것도 10년이나....

그리고 그순간 그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리고, 쏟아져

나왔다.


급하게 쫓기던 일들도 잠시 멈출 수 있었다.

일이나 처리해야 할 일들에 대한 속도는 동일했지만,

마음의 속도가 더 이상 나의 엉덩이를 걷어차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오히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밥을 먹고, 천천히 말을 꺼내고,

심지어 천천히 화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삶의 길이’는 유전이 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시간을 어떻게 느끼느냐’가 정한다는 걸.

나는 70살을 목표로 살던 사람에서

80살을 사는 인간이 아니라,

이제 하루를 깊게 사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누구나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조급한 마음”이 너무 많을 뿐이다.

그 마음이 줄어들면,

남은 시간은 늘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건 누군가에게 하는 인사이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10년의 삶을 보너스로 받았다.

보너스라고 해서 뭐 거창한 건 아니다.

그냥 ‘조금 덜 조급해진 마음’을 얻었을 뿐이다.

그동안 급박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간 잃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찾으러 나섯다.

또한 조금더 살갑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이제는 멈춰 서서 주변을 본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귀 기울이고,

작은 나뭇잎 하나에도 계절을 느낀다.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건,

내가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가을은 무언가를 늦게 알아버린 나처럼

단풍이 조금 늦게 물들었다.

“너 이제 알았구나...라고

바람이 귓가를 스치우며 말한다.

세상도 나를 조금은 기다려주는 것 같다.

마치 “그래, 네가 이제야 제대로 사는구나” 하고

따스한 햇살이 등을 토닥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감사한 것 투성이였다.

다만 내가 그것을 감지하지 못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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