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순간들.

고생했다. 이제 너의 세상으로 가거라

by 이건

내년에 고 3을 바라보는 녀석이 있다.

가방놓고 책 꺼내는데 그 모든 동작이 2분정도 걸린다.

보고 있다면 나도 모르게 녀석의 무력감이

전해질 정도다.


가방을 내려놓는 데 30초,

책을 꺼내는 데 1분 30초.

총 2분.

이건 단순한 느림이 아니다.

청춘의 저항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얘 아직 팬 안꺼낸 상태다.


가방의 지퍼를 내릴 때는 마치

비밀의 문을 여는 고대의 의식 같다.

그 녀석을 보고 있으면

“저건 의지가 아니라 행위 예술이다.”

싶을 때가 있다.


그 녀석의 2분은 ‘포기’가 아니라

‘준비’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 준비가 3년째 이어지고 있을 뿐이지.

나는 오늘도 그런 녀석을 본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래, 천천히 해라.

세상은 널 기다려줄 만큼 느리니까.”


하지만 그건 내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의 생각이다.

가끔은 세상이라는 놈이 너무 거칠게 굴어서

속이 꽁꽁 얼어붙은 날이 있다.

의뢰받은 일을 하다가, 혹은 사람 속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다가

“인간은 참 피곤한 종이다” 싶을 때.

그럴 때 녀석이 2분 동안 가방을 여는 모습을 보면,

왠지 이가 딱딱 부딪히며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너 그러다가 언젠가 임자 만난다.”


세상은 착한 사람에게 상을 주지 않는다.

느린 사람에게 시간을 주지도 않는다.

그냥 냉정하게 지나가버린다.

나는 그거 따라가기 바쁘고!

그래서 나는, 그 녀석을 향해

한참 동안 따끔한 말을 쏟아낸다.


“너 그렇게 여유 부리다간

월세가 널 기다려주지 않을 거야.

세상은 네 속도 맞춰주지 않아.

가방은 빨리 열고, 인생은 더 빨리 닫힌다.”


그런 말을 몇 줄쯤 생각하고 나면

문득, 이상하게 조용해진다.

그리고 그때 깨닫는다.

그 말은 그 녀석에게 한 게 아니었다.

아마,

그건 오래전 책상 앞에서 멍하니 창밖을 보던 10대의 나 자신

나태함과 무력감에 잠만 자고 있던 20대의 나 자신

무언가 두려워서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고

내일부터를 외치다가 끝내 다가가지 못했던

30대의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늘 바쁘게 돌아가지만

사람의 마음은 ‘각자의 준비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녀석을 보며,

마음속에서 또 중얼거린다.


“야, 임자 만나도 괜찮다.

세상은 네가 가방을 다 여는 순간쯤엔

조금은 따뜻해져 있을지도 몰라.”


녀석은 여전히 느리다.

가방을 다 열고 나면,

연필을 깎다가 지우개를 찾고,

지우개를 찾다가 물 마시러 가고,

그러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느린 리듬 속엔 어딘가 부러움 같은 게 있다.


그래서 때로는 녀석이 그렇게 평생 살아도 좋을 것

같다는 기분도 든다. 운이 좋다면 말이지.

정말 임자 만나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되면

자신이 어떤 내면을 가졌는지 어떤 힘을 가졌는지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깨우기 위해 상처를 준다.

그 상처 덕분에 인간은 자란다.

가방을 여는 속도는 그대로여도,

마음의 근육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아마 그때쯤이면 녀석은 깨달을 거다.

세상은 불친절하지만, 결국 자신을 믿게 만드는 방식으로 사람을 단련시킨다는 걸.

누가 대신 싸워주지 않고,

누가 대신 공부해주지 않으며,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그런 걸 깨닫고 나면

가방을 여는 데 걸리는 2분은

더 이상 ‘게으름의 시간’이 아니라

‘숨 고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언젠가 그 녀석이 진짜 세상에 나가

바람 세찬 거리에서 맞서 설 때,

나는 그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혹시 그 녀석이 너무 힘들어 다시 멈춰 선다면

그땐 그냥 이렇게 말해주면 된다.


“괜찮다.

너는 아직도 준비 중인 인간이다.

평생 그렇게 준비만 해도, 그게 네 방식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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