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재규 장군의 유족이다.
그리고 이제는 침묵을 멈추기로 결심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이 사회의 침묵 속에서 살아왔다. 그 침묵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억압하는 구조적 침묵이었다. 나는 이미 『의사 김재규』를 출간했다.
그 책에는 우리가 외면해온 진실과 충분한 증거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그 진실을 마주하기를 두려워한다. 그의 재심은 묻혀 있고, 두 편의 영화—「남산의 부장들」과 「그날, 그 사람들」—은 그의 결단을 단순화하거나 왜곡했다.
역사의 정의는 희화화되었고, 우리는 침묵 속에서 공모해왔다.
내게 김재규 장군은 단지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어린 시절 내 머리를 쓰다듬던 따뜻한 손의 주인이었다. 그는 이미 3성 장군이었지만, 내게는 인자한 어른이었다. 그 기억은 따뜻했지만, 내 인생은 차가운 현실에 부딪혔다.
나는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지만, 연좌제라는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탈락했다.
아무도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았다. 김재규의 유족이라는 이유였다. 나는 죄를 지은 적이 없지만, 그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내 고교 동기 중 한 명은 군의 정점에 올랐다. 그는 지작사령부의 4성 장군이 되었고, 나는 군문 앞에서 멈춰야 했다. 그 차이는 단순한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가 유족에게 씌운 침묵의 굴레였다. 나는 그를 질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오른 자리와 내가 박탈당한 기회 사이에는,
국가가 외면한 정의가 있다.
조부 김석순은 이 나라의 군사적, 공공적 기반을 제공한 사람. 김녕김씨 종친회 부산지회장을 맡았고, 종친회는 신라 최후의 왕 경순왕(김부, 고려 태조 왕건 대의에 따라 신라를 봉헌하고 낙랑공주와 결혼)의 아들 마의태자(신라복원운동지도자)를 계승한 혈통, 사육신 김문기(현.서울경찰청장) 충의공 후손으로 이어지는 의병 독립 민주화 명문가.
증조부 김만석은 만주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했고, 부친 김부수는 중앙대학교 국문학과에서 4·19 혁명의 리더였다. 그는 강제징병과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정신증을 앓았고, 나는 그 유전적 병증을 이어받아 복지 사각지대 속에서 수감까지 되는 등 역사의 곤욕을 치렀지만,
87년 6월 민주항쟁, 촛불혁명 시민정치가, 박근혜-윤석열 탄핵으로 당당히 맞섰다.
조부는 부산시청, 부산법원, 국군통합병원, 언양전파연구원, 울주군청 및 울산시청 관련 부지 등 여러 공공기관의 부지를 제공했다. 그 땅들은 종친회 소유가 아닌, 증조부를 여의고 16세에 50명 가장으로 지게를 지면서 모았던 개인 재산이었다.
그러나 조상들의 뜻에 따라 국방과 공공의 목적을 위해 내놓은 것이었지만,
군사정권은 그 땅들을 정당한 절차 없이 사용했고, 보상은커녕 침묵과 억압만이 돌아왔다. 우리는 그 땅을 되찾기 위해 수십 년간 싸워왔지만, 국가는 기억하지 않았다. 아니,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김녕김씨 종친회 1대 회장의 고문사 복원과 종중 권리 회복을 위해 활동해왔다. 종친회는 단순한 사집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집안의 정신적 중심이며, 항일 의병의 혼이 깃든 장소다.
그러나 행정기관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와 증언을 모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국가가 얼마나 쉽게 역사를 지우고, 얼마나 무책임하게 침묵하는지를 다시금 확인했다.
지금도 나는 싸우고 있다.
부산시청과 부산법원을 상대로 사용료 반환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 땅은 우리 것이었고, 국가가 사용하고 있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외면한다.
마치 김재규의 진실을 외면하듯, 우리의 권리도 외면한다. 우리는 단지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억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당한 역사적 평가와, 침묵하지 않는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언양전파연구원 부지 역시 조부의 땅이었다. 국가가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반환은커녕 사용료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그 부지에 대해서도 소송을 진행 중이다. 대한민국은 공공의 이름으로 사유재산을 빼앗고, 침묵으로 덮는다. 법은 형식일 뿐이고, 정의는 구호일 뿐이다. 실질은 없다. 진실은 없다. 오직 권력과 그에 기생하는 구조만이 있다.
김재규는 단순한 암살자가 아니다.
그는 시대의 양심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부패를 꿰뚫고, 국민을 위한 결단을 내린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그를 배신했다. 재판은 조작되었고, 기록은 왜곡되었으며, 국민은 침묵했다. 나는 그 침묵을 깨기 위해 이 연재를 시작한다. 『의사 김재규』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 왜곡된 역사에 대한 반론, 재심(쪽지재판, 부당고문, 반란주범 등), 그리고 정의를 외면한 사회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침묵하지 않겠다. 나는 기억한다.
독간사 마당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 손길을. 육사 탈락 통보를 받던 그날의 분노를. 조부가 병참부지를 내놓던 결단을. 고문사 속에서 조상들의 혼을 지키던 싸움을. 언양전파연구원 부지 앞에서 외치던 우리의 목소리를. 그리고 지금, 부산시청과 법원 앞에서 외치는 우리의 진실을.
도대체 대한민국은 누구의 나라인가.
과거의 군사 독재 정권 권력 구조와 친일 부역 유산에 맞서,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은 연좌로 낙인찍히고, 국민들은 침묵 속에서 방관한다. 그러나 침묵은 공모다. 이 나라는 정의를 두려워하고, 진실을 외면한다. 나는 그 침묵을 찢기 위해, 이 기록을 남긴다. 이 싸움은 과거의 권력 구조와 그 유산에 맞서, 불굴의 의병정신 독립투사 민주화 혁명으로 진실을 복원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다.
“산 자만이 이 길을 따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