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철학과 민주주의의 미래

by 김작가a

김재규, 철학과 민주주의의 미래

5회차: 시대의 양심을 복원하는 철학적 성찰

1. 김재규의 철학적 유산: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김재규는 단순한 군인이 아니었다. 그는 책을 가까이하며 철학과 정치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지식인이었다. 그의 육성 기록과 법정 진술은 단순한 감정적 고백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적 신념을 담고 있다. 그는 “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혁명하지 않았다.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결단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권력욕이 아닌, 체제에 대한 근본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결단임을 보여준다. 그가 남긴 붓글씨에는 ‘자유’, ‘민주’, ‘평등’, ‘민권’이라는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그가 어떤 정치철학을 품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언어다. 그는 유신체제를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을 통제하는 반민주적 체제”로 인식했고, 그 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 자신의 역사적 책임이라 믿었다.

2. 유신체제의 구조적 모순과 김재규의 비판

유신체제는 박정희가 1972년 10월 유신헌법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극대화하고, 장기집권을 제도화한 정치체제였다. 국회의원 선출 방식, 대통령의 중임 제한 폐지, 긴급조치권 등은 권력 집중과 국민 통제의 수단으로 작동했다. 김재규는 이 체제를 “국민의 자유를 박탈하고, 권력의 사유화를 정당화하는 독재적 구조”로 인식했다. 그는 중앙정보부장으로서 유신체제의 핵심에 있었지만, 내부에서 그 체제의 모순을 누구보다 깊이 체감했다. 그는 박정희에게 여러 차례 유신의 폐해를 직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말하며, 체제의 중심을 제거함으로써 민주주의 회복을 시도했다.

3. 김재규의 결단이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에 던지는 질문

김재규의 결단은 단순한 정치적 암살이 아니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철학적 선택이었다. 그는 박정희를 증오하지 않았고, 오히려 깊이 이해했다. 그러나 유신체제가 더 이상 국민의 자유를 회복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했기에, 그는 결단을 내렸다.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는 다양한 도전과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권력의 집중, 언론의 통제, 시민의 정치적 무관심 등은 유신체제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김재규의 결단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권력의 남용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민주주의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것을 지키기 위한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가?

과거의 독재를 어떻게 기억하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가?

4. 유족으로서, 저자로서 마주한 사회적 편견과 진실의 복원

김재규의 유족으로서, 나는 오랜 시간 사회적 편견과 싸워야 했다. ‘반역자의 가족’, ‘암살자의 후손’이라는 낙인은 단지 개인의 고통을 넘어,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사회적 구조의 반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단순한 암살자가 아닌, 민주주의를 위한 결단을 내린 철학자로 복원하고자 했다. 『의사 김재규』를 집필하면서 나는 수많은 기록을 검토했고, 그의 육성 자료를 복원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가 얼마나 깊은 고뇌 속에서 결단을 내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단지 권력을 향한 욕망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행동했다. 그 진실을 복원하는 일은 단지 한 인물의 명예회복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기억하고 싶은가에 대한 사회적 질문이었다.

5. 김재규를 기억하는 방식과 민주주의 성숙도

우리가 김재규를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그를 단순한 반역자로 규정하는 것은 과거 독재의 논리를 반복하는 것이며, 그의 철학과 결단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되묻는 작업이다. 대중문화는 오랫동안 그를 왜곡된 이미지로 소비해왔다. 영화와 드라마는 그의 결단을 권력 암투로 축소하거나, 감정적 폭발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의 육성 기록과 철학적 고백은 그가 단순한 군인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품은 철학자였고, 사랑했던 지도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린 인간이었다.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은 민주주의적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는 과거의 인물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는 작업은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는가?

민주주의는 단지 제도적 장치가 아니라, 기억과 성찰의 문화적 기반 위에 구축되어야 한다는 점

6. 결론: 시대의 양심을 복원하는 작업

김재규는 단지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이다. 그의 결단은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고뇌한 인간의 선택이었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철학적 고백이었다. 그의 재심은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기억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를 다시 바라보는 일은 시대의 양심을 복원하는 작업이며, 민주주의의 본질을 되묻는 역사적 성찰이다. 나는 유족으로서, 저자로서 그 진실을 기록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기록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다음 회차에서는 김재규의 육성 기록을 중심으로, 그의 인간적 고뇌와 철학적 언어를 더 깊이 탐구할 예정입니다.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04화김재규, 박정희를 사랑한 사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