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재규의 유족이며, 그의 삶과 철학을 기록한 『의사 김재규』의 저자다. 이 글은 단지 한 인물에 대한 복원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기억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며, 동시에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고뇌한 한 인간의 진실을 되찾는 여정이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날의 총성은 단순한 정치적 암살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했던 지도자에게 내린 가장 고통스러운 결단이었고, 민주주의를 향한 절박한 외침이었다. 김재규는 “나는 박정희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그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고향 선배이자 국가 지도자에 대한 인간적 애정과 역사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한 한 인격자의 고백이었다.
김재규의 최후 진술은 단순한 변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양심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철학적 고백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혁명하지 않았다.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결단했다.” 이 진술은 그가 단순한 권력 투쟁의 주체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박정희를 증오하지 않았고, 오히려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다. 그러나 유신체제가 더 이상 국민의 자유를 회복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했기에, 그는 결단을 내렸다. 그의 진술은 감정적 고백을 넘어, 정치철학적 선언이었다. 그는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역사적 책임을 인식했고, 그 무게를 끝까지 짊어졌다.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 사건 직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에 의해 체포되었고,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그 재판은 절차적 정의가 철저히 무시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1심 재판: 단 16일 만에 사형 선고
항소심: 6일 만에 종결
대법원 확정: 신속한 판결 후, 1980년 5월 24일 사형 집행
당시 국선 변호인이었던 안동일 변호사는 “그 재판은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었다”고 증언했다. 김재규는 고문과 가혹행위 속에서 진술을 강요당했고, 변호인의 조력권은 사실상 박탈되었다. 이는 형사소송법과 헌법이 보장하는 피고인의 권리를 명백히 침해한 것이다.
2025년 2월, 서울고법 형사7부는 김재규의 내란 목적 살인 혐의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고문과 가혹행위 인정: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의 행위는 형법상 폭행·가혹행위죄에 해당
절차적 정의 위반: 피고인의 방어권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됨
재심 개시 요건 충족: 형사소송법 제420조 및 제422조에 따라 재심 사유 인정
이 결정은 단순한 법적 판단을 넘어, 역사적 정의의 회복을 의미한다. 김재규의 행위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결단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재심은 과거의 왜곡된 평가를 바로잡는 첫걸음이 된다.
김재규 사건은 국제 인권 기준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법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한다:
고문 금지: 모든 형태의 고문은 절대 금지되며, 고문에 의해 얻은 진술은 증거로 인정될 수 없음
공정한 재판: 피고인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충분한 준비 시간, 독립된 법원의 심리를 보장받아야 함
사형 집행의 제한: 사형은 가장 중대한 범죄에만 적용되어야 하며, 절차적 정의가 철저히 보장되어야 함
김재규의 재판은 이 모든 기준을 위반했다. 따라서 그의 재심은 국내법뿐 아니라 국제 인권 기준에 따라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한다.
김재규의 명예회복을 위한 움직임은 유족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어져 왔다. 특히 ‘김재규 명예회복추진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활동을 벌여왔다:
재심 청구서 제출
육성 기록 복원 및 공개
학술 세미나 및 시민 토론회 개최
영화와 대중문화 속 왜곡된 이미지 바로잡기
이러한 움직임은 단지 한 인물의 복원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기억하고 싶은가에 대한 사회적 질문을 던진다.
김재규는 오랫동안 ‘반역자’ 혹은 ‘정치적 암살자’로 묘사되어 왔다. 영화와 드라마는 그의 결단을 단순한 권력 암투로 축소하거나, 감정적 폭발로 왜곡했다. 그러나 그의 육성 기록과 철학적 고백은 그가 단순한 군인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책을 가까이하는 지식인이었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품은 철학자였으며,
박정희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인간이었다.
그의 결단은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고뇌한 인간의 선택이었다. 대중문화가 삭제한 진실을 복원하는 작업은,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기억하고 싶은가에 대한 문화적 성찰이기도 하다.
김재규의 행위는 단순한 정치적 암살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했던 지도자에게 내리는 가장 고통스러운 결단이었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철학적 선택이었다. 그는 박정희를 증오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다. 그러나 유신체제가 더 이상 국민의 자유를 회복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했기에, 그는 결단을 내렸다. 그의 재심은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기억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다. 김재규를 다시 바라보는 일은, 시대의 양심을 복원하는 작업이며, 민주주의의 본질을 되묻는 역사적 성찰이다.
5회차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룰 예정입니다:
김재규가 남긴 철학적 유산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유신체제의 구조적 모순과 그에 대한 김재규의 비판
김재규의 결단이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에 던지는 질문
유족으로서, 저자로서 내가 마주한 사회적 편견과 진실의 복원
김재규를 기억하는 방식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에 미치는 영향
그는 단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이다. 5회차에서 그 질문에 더 깊이 다가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