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와 박정희는 경상북도라는 같은 지역적 뿌리를 공유했다. 김재규는 상주 출신, 박정희는 구미 출신으로, 두 사람은 지역적 유대감과 정서적 친밀감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었다. 박정희가 군 장교로서 국가 재건의 꿈을 품고 있을 때, 김재규 역시 군인의 길을 걸으며 그를 존경했다. 김재규는 박정희를 단순한 상관이 아닌, 민족의 지도자로서 바라보았고, 그의 국가관과 리더십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김재규는 박정희 정권의 핵심 기관인 중앙정보부의 수장으로서, 정권의 안보와 질서를 유지하는 데 헌신했다. 그는 박정희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정책을 집행했고, 내부의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하며 정권의 안정을 도왔다. 그 과정에서 김재규는 박정희의 철학과 국가관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이해했고, 그의 결단과 추진력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박정희 정권의 내부 모순과 권력의 사유화, 그리고 유신체제의 폐해를 목격하게 된다. 그가 느낀 충성심은 점차 고뇌로 바뀌었고, 박정희를 향한 존경은 그를 바로잡고자 하는 책임감으로 전환되었다.
김재규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를 향해 총을 겨눈 그 순간은 단순한 정치적 반란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했던 지도자에게 내리는 가장 고통스러운 결단이었다. 그는 박정희를 증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고, 그가 더 이상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절감했기에, 그 결단을 내렸다.
그의 진술에서 반복되는 “나는 박정희를 사랑했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고향 선배이자 국가 지도자에 대한 인간적 애정과 역사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한 한 인격자의 고백이다.
김재규는 단순한 군인이 아니었다. 그는 철학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의 주변 인물들은 그를 “조용하고 사색적인 사람”, “책을 가까이하는 지식인”으로 기억한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품고 있었고, 유신체제의 종말을 통해 국민의 자유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는 박정희를 제거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지만, 그 결단이 가져올 파장과 비극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사의 무게를 짊어졌고, 그 선택의 책임을 끝까지 감당했다.
김재규의 행위는 단순한 정치적 암살이 아니라,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고뇌한 인간의 선택이었다. 그는 박정희를 증오하지 않았고, 그를 제거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회복하고자 했다. 이 점에서 김재규는 단순한 반역자가 아니라, 시대의 양심이자 민주주의의 결단자였다.
그의 선택은 오늘날에도 논쟁의 대상이지만, 그가 박정희를 얼마나 사랑했고, 그 사랑이 어떻게 결단으로 이어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첫걸음이다.
4회차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룰 예정입니다:
김재규의 실제 법정 진술과 육성 기록 분석
당시 재판의 절차적 문제와 인권 침해 사례
국제 인권 기준에 따른 재심 청구의 법적 근거
유족과 시민단체의 재심 요구 움직임과 사회적 반향
영화가 삭제한 진실을 복원하는 작업의 의미
김재규를 다시 바라보는 일은, 단지 한 인물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기억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다. 4회차에서 그 질문에 더 깊이 다가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