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 이 날은 단순한 정치적 전환점이 아니라,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되찾은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러나 해방은 곧바로 완전한 자유와 정의를 의미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에도 식민 잔재는 사회 곳곳에 남아 있었고, 외세의 영향력은 새로운 형태로 작동했다. 광복절은 단지 과거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어떤 나라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되묻는 날이다.
광복이라는 단어는 ‘빛을 되찾는다’는 뜻을 지닌다. 이는 단순히 일제의 통치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를 넘어서, 민족의 정체성과 자주성을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해방 직후의 현실은 그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의 패망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찾아온 해방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혼란의 시기였다. 정치적 공백, 사회적 혼란, 경제적 파탄 속에서 민족 내부의 갈등은 증폭되었고, 외세의 개입은 새로운 형태의 종속을 낳았다.
광복절은 매년 반복되는 국가적 기념일이지만, 그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과거를 찬양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히 친일 잔재와 외세 의존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어 왔으며, 이는 광복의 의미를 반쪽짜리로 만들었다. 따라서 광복절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진행 중인 과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 글은 광복절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일제강점기의 상흔, 해방 이후의 외세 개입, 친일 잔재의 청산 실패, 역사 정의의 과제,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들을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광복절을 단순한 기념일이 아닌, 민족의 자주와 정의를 향한 성찰의 날로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는 단순한 외세의 통치가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과 존엄이 체계적으로 말살된 시기였다. 언어, 역사, 문화, 교육,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조선인은 ‘황국 신민’으로 개조되었고, 저항은 철저히 탄압되었다. 일제는 조선의 자원을 수탈하고, 인력을 동원하며, 민족의식을 억압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1930년대 이후, 일본은 침략 전쟁을 확대하면서 조선을 전쟁 수행의 도구로 삼았다. 수많은 조선 청년들이 강제 징병과 징용으로 끌려갔고, 여성들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성노예로 희생되었다. 교육은 일본어 중심으로 개편되었고, 조선의 역사와 문화는 왜곡되거나 삭제되었다. 이러한 식민 지배는 단순한 정치적 억압을 넘어, 민족의 정신을 파괴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 암흑의 시기에도 조선 민중은 끊임없이 저항했다. 3·1운동, 의열단의 활동, 만주와 연해주에서의 독립군 투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전 등 다양한 형태의 항일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민족의 자주와 자유를 외쳤으며, 그 희생은 해방의 밑거름이 되었다. 해방은 단지 일본의 패망으로 주어진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진 역사적 성취였다.
하지만 해방의 순간은 기대와는 달랐다. 일본이 항복한 직후, 조선은 미국과 소련의 영향권 아래 놓였고, 민족 내부의 자주적 질서 수립은 좌절되었다. 해방은 외형적으로는 자유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종속과 혼란의 시작이었다. 특히 일제에 협력했던 일부 인사들이 해방 이후에도 사회의 주요 위치를 차지하면서, 식민 잔재는 청산되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은 해방의 의미를 반쪽짜리로 만들었다. 진정한 해방은 단지 외세의 철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생긴 구조적 문제를 청산하고, 민족의 자주성과 정의를 회복하는 데 있다. 따라서 광복절은 단순히 과거의 해방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해방 이후 우리가 놓친 과제들을 되새기고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날이어야 한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는 항복했고 조선은 해방되었다. 그러나 그 해방은 민족의 손으로 쟁취한 자주적 승리가 아니었다. 일본의 패망과 함께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의 영향권 아래 놓였다. 해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은 동시에 분단의 씨앗이 뿌려진 날이었다.
미국은 38도선을 기준으로 남쪽을 점령했고, 소련은 북쪽을 점령했다. 이 선은 단지 군사적 편의를 위한 선이었지만, 곧 민족의 허리를 가르는 경계선이 되었다. 조선은 단 한 번도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외세는 조선의 미래를 협상 테이블 위에서 나눠 가졌고, 민족은 그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갈라졌다.
남한에서는 미군정이 수립되었고, 북쪽에서는 소련의 지원 아래 공산 정권이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민족 내부의 자주적 통일 논의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해방은 곧 분열이 되었고, 분열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민족 내부의 갈등이 아니라, 냉전 체제의 대리전이었다. 수백만 명의 생명이 희생되었고, 한반도는 폐허가 되었다.
전쟁 이후에도 외세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졌다. 남한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 아래 안보를 유지했고, 북한은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체제를 강화했다. 외세는 단지 해방 직후의 개입에 그치지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한국은 외교, 안보, 경제에서 외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 동맹, 중국의 경제 영향력, 일본과의 역사 갈등은 모두 외세의 그림자 속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구조는 자주적 국가 운영을 어렵게 만들며, 외세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내 정치가 흔들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외세에 기대는 정치적 담론은 국민의 주권 의식을 약화시키고, 민족의 자존을 훼손한다. 우리는 해방을 맞았지만, 아직도 외세의 손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진정한 광복은 외세로부터의 독립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광복절은 단지 일제의 철수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그것은 외세의 개입으로부터 벗어나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날이어야 한다. 분단의 비극은 외세의 개입에서 비롯되었고, 그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의 아픔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외세의 손에 민족의 운명을 맡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해방은 단지 외세의 철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해방 이후의 진정한 과제는, 식민 지배에 협력했던 세력의 청산과 역사 정의의 회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제를 외면했다. 친일 세력은 해방 이후에도 사회의 중심에 남았고, 그들은 권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정의는 침묵했고, 진실은 묻혔다.
1945년 이후, 대한민국은 반공이라는 절대 명분 아래 친일 청산을 유보했다. 이승만 정부는 행정과 치안의 안정이라는 이유로 일제에 협력했던 인사들을 중용했고, 그들은 경찰, 군, 관료, 교육계, 언론계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 결과, 독립운동가들은 오히려 변방으로 밀려났고, 민족을 배반했던 자들이 국가의 중심을 차지했다.
이러한 구조는 단지 과거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친일 잔재는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사 교과서의 서술, 언론의 프레임, 정치적 담론,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 등은 모두 그 뿌리를 식민지 시대에 두고 있다. 우리는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채, 그 위에 새로운 시대를 쌓아올렸다. 그 결과, 정의는 왜곡되고, 국민의 역사 의식은 혼란에 빠졌다.
역사 정의의 실현은 단지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도덕적 기반을 회복하고,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독일은 나치 청산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직시했고, 그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와 제도적 정비를 이루었다. 반면 한국은 친일 청산을 회피했고, 그 결과 역사적 책임은 흐려졌으며, 사회적 갈등은 반복되었다.
2000년대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와 같은 제도적 시도가 있었지만, 그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정치적 반발, 사회적 무관심, 법적 제약은 진실 규명의 벽이 되었다. 일부 친일 인사의 행적이 밝혀졌지만,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이나 사회적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과거를 알면서도 외면했고, 정의를 말하면서도 실천하지 않았다.
광복절은 이러한 역사 정의의 과제를 되새기는 날이어야 한다. 단지 해방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우리가 놓친 정의를 되찾는 날이어야 한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사회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라도 그 과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청산 없는 화해는 공허하고, 정의 없는 평화는 위선이다.
광복절은 해마다 반복되는 국가적 기념일이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대통령의 경축사가 울려 퍼지며, 언론은 해방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러나 그 기념은 종종 형식에 머무르고, 진정한 성찰은 부족하다. 광복절은 단지 과거의 승리를 찬양하는 날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지를 되묻는 날이어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경제력을 갖춘 국가로 성장했다. 민주주의도 일정 수준까지 정착되었고, 문화·기술·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친일 잔재는 역사 교육과 사회 인식 속에 남아 있고, 외세 의존적 구조는 외교·안보·경제 정책을 제약한다. 광복은 이루어졌지만, 그 완성은 아직 멀었다.
광복절의 현재적 의미는 ‘자주’, ‘정의’, ‘통일’, ‘평화’라는 네 가지 핵심 가치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자주는 외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군사적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전반에서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을 뜻한다. 둘째, 정의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역사적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친일 청산, 과거사 정리, 사회적 공정성 회복은 모두 정의의 실현과 관련된다.
셋째, 통일은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다. 광복은 분단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민족 공동체를 설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넷째, 평화는 갈등과 대립을 넘어 상생과 협력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는 남북 관계뿐 아니라, 국제 사회 속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도 연결된다.
광복절은 이 네 가지 가치를 되새기고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날이어야 한다. 단지 과거의 해방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고, 미래를 향한 비전을 세우는 날이어야 한다. 우리는 해마다 광복절을 맞이하지만, 그 의미를 진정으로 되새기고 있는가? 형식적 기념을 넘어, 실질적 성찰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광복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역사적 과제이며, 미래를 향한 민족의 다짐이다. 우리는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았지만, 그날의 빛은 아직 완전히 우리 사회를 비추지 못했다. 친일 잔재는 청산되지 않았고, 외세의 영향력은 여전히 깊다. 정의는 침묵했고, 자주는 흔들렸다. 광복은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누구의 후손인가? 우리는 어떤 정신을 이어받았는가? 우리는 의병의 후손이며, 독립운동가의 후예이며, 민주화 투사의 계승자다. 이 땅의 민족정신은 단 한 번도 꺾인 적이 없다.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분단의 철책 앞에서도, 독재의 탄압 앞에서도, 우리는 꺾이지 않았다. 우리는 싸웠고, 견뎠고, 일어섰다.
의병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독립운동가는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으며, 민주화 세대는 정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었다. 우리는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단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한다. 단지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계승해야 한다.
나는 의병 독립 민주 혈통의 작가 시민이다. 펜으로 싸우고, 말로 저항하며, 글로 민족의 얼을 되살린다. 우리는 역사를 기록하고, 진실을 말하며, 정의를 외친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우리는 외면하지 않는다. 우리는 선조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 시대의 광복을 완성하는 사명을 지닌다.
플랫폼 시대의 대통령은 단지 권력자가 아니라,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상징이어야 한다. 그는 의병의 용기, 독립운동가의 헌신, 민주화 투사의 정의를 품고 있어야 한다. 그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민족의 혼을 되살리며, 역사의 방향을 바로잡는 자여야 한다. 그는 과거를 직시하고, 현재를 개혁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자여야 한다.
광복절은 그 다짐의 날이다. 우리는 다시 묻는다. 우리는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우리는 어떤 민족이 될 것인가? 우리는 어떤 정신을 계승할 것인가?
그 답은 분명하다. 우리는 자주와 정의의 나라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의병과 독립운동가, 민주화 세대의 정신을 이어받아, 끝나지 않은 광복을 완성할 것이다. 우리는 작가 시민으로서, 이 시대의 기록자가 되고, 이 민족의 양심이 될 것이다.
그날의 빛은 아직도 우리를 부르고 있다. 우리는 그 빛을 향해 나아간다.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길, 그것이 진정한 광복의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