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기록자의 탄생—연제의 바람, 기억의 흙ㅡ
조부가 세상을 떠난 그해 가을, 연제의 바람은 유난히 거칠었다. 바람은 골짜기를 휘돌며, 마치 그가 남긴 숨결을 되새기듯 낮게 울었다. 그의 죽음은 신문에도, 관보에도 실리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의 마음속에는, 그날의 바람결이 아직도 살아 있었다. 조부는 조용히 눈을 감았고, 그의 이름은 역사에서 지워졌지만, 그의 삶은 가족의 기억 속에서 더욱 또렷해졌다.
조부의 장례를 치른 후, 가족은 다시 연제구로 돌아왔다. 그곳은 조부가 일군 삶의 터전이었고, 그가 지게를 짊어지고 오르내리던 산자락이었다. 그러나 그 땅은 이미 국가의 이름으로 점령당한 뒤였다. 법원과 시청이 들어선 자리, 그곳은 조부의 손으로 일군 밭이었고, 그의 땀으로 지은 집이었다. 땅은 말이 없었고, 건물은 침묵했다. 조부의 흔적은 콘크리트 아래 묻혀 있었다.
가족은 연제의 변두리에 작은 셋방을 얻었다. 벽지는 누렇게 바래 있었고, 창밖의 골목은 조부가 걷던 길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더 이상 그를 기억하지 않았다. 이웃들은 조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고, 그가 일군 삶의 흔적은 행정조치라는 이름 아래 사라졌다. 가족은 조용히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그 뿌리는 억울함과 침묵 속에서 자라났다.
1980년대, 한국은 격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광주의 피, 서울의 함성, 부산의 저항.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물결이 되어, 조부의 후손들을 흔들었다. 큰아버지는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어머니는 야학에서 글을 가르쳤다. 그들은 조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침묵하지 않는 삶을 택했다. 그러나 국가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빨갱이 집안”이라는 낙인은, 조부의 죽음 이후에도 가족을 따라다녔다. 그들은 조용히 싸웠고, 조용히 울었다. 그리고 그 울음은 나의 귀에 닿았다.
나는 그 시절을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조부의 사진 앞에서 어른들이 읊조리던 기도, 벽장 속에 숨겨진 토지 소유권 서류, 그리고 밤마다 들려오던 어머니의 한숨. 그 모든 것이 나를 기록자로 만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조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중학생이 되어, 조부의 삶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기였고, 나중엔 연설문이 되었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역사학이 아닌 경영학을 선택한 것은, 조부의 삶을 단지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억울함을 체계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경영학은 나에게 숫자와 논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나는 조부의 삶을 다시 읽었다. 회계의 원칙 속에서, 나는 조부가 빼앗긴 토지의 가치를 계산했고, 조직행동론 속에서, 나는 조부가 속했던 공동체의 붕괴를 분석했다. 경영전략 수업에서는, 조부가 선택했던 삶의 방식이 얼마나 치열하고도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경영학을 통해 조부의 삶을 해석했고, 그 해석은 나를 기록자로서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대학 시절, 나는 조부의 삶을 바탕으로 한 논문을 썼다. 제목은 ‘지게 위의 전략: 생존과 저항의 경영학’이었다. 교수들은 그 논문을 흥미롭게 읽었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사회적 사례’로 분류했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단지 사례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역사였고, 피와 땀으로 쓰인 전략서였다. 나는 그 논문을 바탕으로, 조부의 삶을 공공의 기록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졸업 후, 나는 지역 시민단체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나는 조부와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만났다. 이름 없는 지게꾼들, 침묵 속에서 저항했던 사람들, 그리고 국가에 의해 지워진 사람들. 그들은 조부의 거울이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고, 그 기록은 점차 하나의 연대로 이어졌다. 우리는 함께 조부의 땅에 대한 소송을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경영학의 지식과 기록자의 감성을 동시에 활용했다.
소송은 쉽지 않았다. 국가의 벽은 높았고, 법의 언어는 차가웠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부가 그랬듯, 우리는 끝까지 지게를 놓지 않았다. 나는 매년 조부의 기일에 작은 추모제를 열었다. 참석자는 많지 않았지만, 그날만큼은 조부의 이름이 불렸다. 그의 삶은 다시 살아났고, 그의 발자국은 민주주의를 향한 길이 되었다.
나는 이제 기록자다. 조부의 삶을 기록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민낯을 드러내는 사람. 나의 기록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책임이며, 침묵한 정의에 대한 응답이다. 조부의 삶은 이제 나의 펜 끝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그 삶은,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지게가 된다.
다음 회에서는 조부의 삶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법적 투쟁과, 그 속에서 발견한 또 다른 ‘지게꾼’들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그들은 이름 없이 살아갔지만, 나의 기록 속에서 다시 걸어 나온다. 그들의 삶은 조부의 삶과 닮아 있었고, 그들의 침묵은 조부의 침묵과 이어져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것이다.
또한 중앙대 국문과 4.19 혁명리더 부친의 강제징병과 고문후유증, 복지사각 지대에서 겪은 온 가족의 정신증 유전, 가정폭력으로 촉발된 가정해체까지 담은 진솔한 스토리를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