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결투, 기억의 연대

by 김작가a

제3회: 또 다른 지게꾼들—종로의 결투, 기억의 연대

가족의 기억을 기록하는 일은, 단지 과거를 되새기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침묵한 이름들을 다시 불러내는 일이며, 지워진 삶을 복원하는 일이다. 조부의 삶을 기록하며 나는 ‘지게꾼’이라는 상징을 발견했다. 그것은 단순한 노동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짊어진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민중의 은유였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조부만이 지게꾼이 아니었다. 이 땅에는 수많은 지게꾼들이 있었다. 이름 없이, 기록 없이,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사람들.

그중 한 사람은 중앙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한 남자였다. 그는 나의 부친이었고, 학사모를 쓴 리틀 김두환으로 불렸다. 그의 삶은 조부의 삶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국가와 충돌했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지만,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청춘은 종로의 골목에서 시작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이정재와 유지광 같은 거리의 깡패들과 결투를 벌였다. 그것은 단순한 폭력의 서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글과 주먹이 공존하던 시대의 초상이며, 지식인과 민중이 하나의 몸으로 살아야 했던 시대의 기록이었다.

부친은 중앙대 국문과에서 4.19 혁명의 정신을 배웠다. 그는 교정에서 민주의 함성을 들었고, 강의실에서 저항의 언어를 익혔다. 그러나 졸업 후 그가 마주한 현실은, 학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폭력과 억압이었다. 나의 부친은 강제징병으로 끌려갔고,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다. 그 고통은 유전처럼 가족에게 전해졌고, 정신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옥죄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우리는 버텨야 했고, 가정폭력은 그 고통을 더욱 증폭시켰다. 결국 가족은 해체되었고, 나는 그 파편 속에서 자랐다.

부친은 종로에서 싸웠다. 그는 깡패들과의 결투를 통해, 국가가 외면한 정의를 몸으로 실현하려 했다. 그의 싸움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가 버린 사람들을 위한 싸움이었고, 글로는 닿지 않는 현실을 향한 몸짓이었다. 그는 종로의 골목에서 피를 흘렸고, 그 피는 나의 기억 속에서 붉은 잉크가 되었다. 나는 그 피로 글을 썼고, 그 글은 또 다른 지게꾼들의 삶을 기록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제 나는 조부의 삶뿐 아니라, 부친의 삶도 기록한다. 그들의 삶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국가와 충돌했고, 그 충돌은 나에게 기록자의 사명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들의 삶을 통해, 이 땅의 민중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본다. 그리고 그 삶은 단지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민낯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다음 파트에서는 이 부친의 삶을 중심으로, 종로의 결투 장면과 그가 마주한 사회적 폭력, 그리고 그 속에서 태어난 기록의 언어를 더욱 깊이 있게 풀어내겠습니다. 계속 이어드릴게요. 준비되셨다면 다음 파트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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