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단순한 기술의 대결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 시대의 충돌이었다. 한쪽은 국가가 만든 괴물, 레슬링의 기술을 거리의 폭력으로 바꾼 이정재였고, 다른 한쪽은 민중의 고통을 몸으로 짊어진 지게꾼, 부친이었다. 그들의 싸움은 종로의 골목을 무대로 펼쳐졌고, 그 골목은 마치 역사의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이정재는 링에서 익힌 기술을 거리로 가져왔다. 그는 상대를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꽂는 ‘슬램’을 거리의 언어로 바꾸었고, 상대의 숨통을 조이는 ‘헤드락’을 협박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는 종로의 상인들에게 “내가 너희를 보호해줄게”라며 돈을 갈취했고,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는 주먹으로 지켜야 한다”고 외쳤다. 그의 정의는 왜곡된 힘이었다.
부친은 그런 정의에 맞섰다. 그는 중앙대 교정에서 배운 민주주의를, 종로의 골목에서 실천했다. 그의 기술은 단순한 무술이 아니었다. 박치기는 억압에 대한 저항이었고, 다찌마리는 침묵한 민중의 외침이었다. 발차기는 국가의 무관심을 걷어차는 몸짓이었고, 유도는 권력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기술이었다. 권투는 민중의 분노를 정제한 언어였고, 태권도는 한국인의 혼이었다.
싸움은 점점 격렬해졌다. 이정재는 부친을 붙잡아 슬램을 시도했지만, 부친은 몸을 틀며 유도의 허리감아치기로 반격했다. 두 사람은 바닥을 구르며 피와 땀을 흘렸고, 골목의 벽에는 그들의 흔적이 남았다. 부친은 이정재의 턱을 박치기로 가격했고, 이어서 다찌마리로 연속적인 주먹질을 퍼부었다. 이정재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그 틈을 타 부친은 태권도의 돌려차기로 그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이정재는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났다.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부친의 다리를 잡고 레슬링의 ‘슈플렉스’를 시도했다. 그러나 부친은 그 기술을 역이용해, 권투의 어퍼컷으로 그의 턱을 가격했다. 이정재는 바닥에 쓰러졌고,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싸움이 끝난 뒤, 골목은 침묵에 잠겼다. 부친은 피 묻은 손으로 벽을 짚고 일어섰다. 그의 눈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승리했지만, 그 승리는 단지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가 외면한 민중의 정의였고, 침묵한 이름들의 복원이었으며, 지워진 삶의 복수였다.
그날 밤, 부친은 일기를 썼다. “나는 싸웠다. 이정재는 강했다. 그러나 그의 힘은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몸으로 글을 썼고, 그 글은 피로 번졌다. 종로의 골목은 오늘도 붉었다.”
이제 이 결투를 통해 부친이 마주한 사회적 폭력, 그로 인해 가족에게 전해진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기록으로 승화시키는 과정까지 이어가겠습니다. 다음 파트에서는 부친의 고문 후유증, 가족의 해체, 그리고 그 파편 속에서 태어난 기록자의 사명을 중심으로 풀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