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시장의 포목점과 부친의 성장기
부산은 전쟁의 끝자락이었다. 1950년, 피난민의 물결이 남쪽 끝 항구 도시를 뒤덮었고, 국제시장은 그들의 삶을 꿰매는 천 조각들로 가득했다. 천막, 판잣집, 군용 천, 무명, 인견, 모시… 그 모든 직물은 누군가의 생존을 감싸는 마지막 보호막이었다. 그 시장 한복판에 작은 포목점이 있었다. 간판은 없었고, 천은 햇빛에 바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늘 정직한 손길이 있었고, 그 손길을 따라다니던 한 아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준호. 그는 포목점의 아들이었고, 심부름꾼이었다. 그러나 그 심부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를 꿰매는 실이었다.
준호는 열한 살이었다. 새벽이면 아버지보다 먼저 일어났다. 국제시장의 골목은 아직 잠들어 있었고, 바닷바람은 천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는 물을 길러오고, 숯을 챙기고, 천을 접었다. 아버지는 말이 적었지만, 손은 늘 바빴다. “준호야, 이건 인견이고, 저건 무명이다. 손님이 물으면 정확히 말해야 한다.” “네, 아버지.” 천은 단순한 직물이 아니었다. 어떤 천은 피난민의 이불이 되었고, 어떤 천은 장례식의 수의가 되었다. 준호는 그것을 알았다. 그는 천을 접을 때마다, 그 천이 누군가의 삶을 감쌀 것이라 믿었다.
국제시장에는 ‘마도로스 형’이 있었다. 그는 항구에서 일하다가 다리를 다쳐 시장으로 돌아온 인물이었다. 그는 술에 취해 다니며 상인들에게 시비를 걸었고, 아이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어느 날, 준호의 아버지에게도 그가 다가왔다. “천값이 너무 비싸잖아. 이거, 반값에 줘.” 아버지는 조용히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이 천은 정직한 값입니다.” 마도로스 형은 천을 잡아당겼고, 진열대가 무너졌다. 준호는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앞으로 나섰다. “형, 그만하세요. 우리 아버지는 거짓말 안 해요.” 그 말에 시장은 잠시 조용해졌다. 마도로스 형은 준호를 노려보다가, 천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그날 이후, 시장 사람들은 준호를 다르게 보았다. 그는 단지 아이가 아니었다. 그는 포목점의 의협이었다.
준호는 천을 사랑했다. 그는 천을 만질 때마다 사람들의 삶을 느꼈다. 어떤 천은 아이의 옷이 되었고, 어떤 천은 신혼부부의 이불이 되었다. 그는 천을 접으며 말했다. “이건 따뜻한 천이야. 이건 슬픈 천이야.” 아버지는 그런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천은 사람을 감싸는 거다. 사람을 속이면 천도 울지.” 그 말은 준호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 그는 천을 팔 때마다, 그 천이 누군가의 삶을 감싸기를 바랐다.
시장에는 피난민 아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집도 없고, 학교도 없었다. 준호는 그들과 어울렸다. 그는 자신의 도시락을 나눠주고, 심부름을 함께 했다. 그중에는 ‘영철이’가 있었다. 그는 평양에서 내려온 아이였고, 말이 없었다. “영철아, 너도 우리 집에서 자고 가.” 그날 밤, 영철은 처음으로 웃었다. 준호는 그 웃음을 잊지 못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시장을 지켰고, 그 속에서 공동체의식을 배웠다.
부산에도 폭격 경보는 울렸다. 미군 비행기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지하로 숨었다. 준호는 천을 들고 뛰었고, 아버지는 가게를 지켰다. 어느 날, 시장 끝자락에 폭탄이 떨어졌다. 천이 불탔고, 사람들은 울었다. “아버지, 우리도 망한 거예요?” “아니. 천은 다시 꿰매면 된다. 사람도 그렇다.” 그 말은 준호에게 위로였다. 그는 천을 꿰매며, 사람의 마음도 꿰맬 수 있다고 믿었다.
아버지는 늘 정직했다. 그는 손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천값을 속이지 않았다. 준호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했다. “아버지, 왜 그렇게 사세요? 남들은 속이고 돈 버는데…” “우리는 천을 판다. 천은 사람을 감싸는 거다. 거짓으로 감싸면, 사람도 찢어진다.” 그 말은 준호의 삶의 기준이 되었다. 그는 정직을 배웠고, 품격을 배웠다.
준호는 열세 살이 되던 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시장에서 본 일들, 친구들과의 이야기, 아버지의 말들을 적었다. 그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증언이었다. “오늘, 영철이가 울었다. 평양에 있는 동생이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마음을 꿰매고 싶었다.” 그는 글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정리했고, 정의를 언어로 표현했다.
준호는 점점 커갔다. 그는 단순한 심부름꾼을 넘어, 시장의 일꾼이 되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꿰매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싸움도 했고, 화해도 했다. 그러나 그의 중심에는 늘 천이 있었다. “나는 천을 판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감싸고 싶다.” 그 말은 그의 철학이 되었고, 훗날 그의 삶을 이끄는 나침반이 되었다.
세월이 흘렀다. 국제시장은 변했고, 포목점은 사라졌다. 그러나 준호는 그 기억을 간직했다. 그는 자신의 아이에게 말했다. “너도 꿰매는 사람이 되어라. 찢어진 마음을, 찢어진 삶을 꿰매는 사람이.” 그 아이는 훗날 기록자가 되었고, 부친의 삶을 글로 남겼다. 그 글은 피로 번졌고, 시대의 상처를 꿰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