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 청와대는 겉으로는 안정된 권력의 중심처럼 보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체제를 통해 절대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경제는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내부는 균열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 균열의 중심에는 한 인물이 있었다. 최태민. 그는 목사이자 구국봉사단 총재였고, 박근혜의 정신적 멘토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를 경계한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자 박정희의 오랜 측근. 이 글은 그 세 인물의 교차점에서 벌어진 갈등과 비극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최태민은 1970년대 중반, 박근혜에게 접근했다. 당시 박근혜는 육영수 여사의 피격 이후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었고, 청와대의 안주인 역할을 맡으며 외로움과 책임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최태민은 그런 그녀에게 “어머님의 영혼이 나를 통해 당신과 대화하고 있다”고 말하며 접근했다. 박근혜는 처음엔 경계했지만, 점차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최태민은 구국봉사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박근혜를 명예총재로 앉혔다. 그는 박근혜의 이름을 내세워 기업과 인사들에게 접근했고, 각종 이권을 챙겼다. 그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고, 청와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중앙정보부는 그의 행적을 면밀히 조사했고, 그 결과는 김재규에게 보고되었다.
김재규는 박정희의 오랜 측근이었다. 그는 경북 출신으로 박정희와 지역적 인연이 있었고, 군 시절부터 신뢰를 받아왔다.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된 그는 청와대의 안보와 정보 관리를 책임졌고, 최태민의 존재는 그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김재규는 최태민의 비리를 수차례 박정희에게 보고했다. 그는 “최태민은 구국봉사단을 이용해 기업을 갈취하고, 여성 정치 지망생들을 성추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이를 묵살했다. 오히려 구국봉사단 총재직을 박근혜에게 넘기며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만들었다. 김재규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나라의 암적 존재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고, 점차 결심을 굳혀갔다1.
박근혜는 최태민과의 관계에 대해 외부의 비판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최 목사님은 나에게 정신적 지주이며, 어머니의 뜻을 이어주는 분”이라고 말했고, 그의 조언을 정치적 판단에도 반영했다. 박근영과 박지만은 이 관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박근영은 예술 활동에 집중하며 청와대의 정치적 긴장에서 거리를 두려 했고, 박지만은 군사훈련과 학업에 몰두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최태민은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특히 박근혜에게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김재규와 경호실장 차지철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차지철은 박정희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고, 강경한 안보 정책을 주장했다. 그는 부마항쟁 당시 “탱크로 밀어버리겠다”고 말할 정도로 과격한 대응을 주장했고, 김재규는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민심이 폭발 직전이며, 민주화를 지연시키면 국가적 혼란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차지철의 말을 더 신뢰했고, 김재규의 보고는 무시되었다. 이 상황에서 최태민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고, 김재규는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고 판단했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는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를 향해 총을 들었다. 그는 “각하는 내 은인이지만,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날의 총성은 단순한 암살이 아니라, 김재규에게는 방어의 행위였다. 그는 최태민의 영향력, 차지철의 강경 노선, 박정희의 판단력 상실을 모두 종합해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는 사형 직전까지도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면 최태민은 교통사고라도 내서 처치해야 할 놈이다”라고 말하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의 거사는 박근혜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그녀는 이후 최태민과의 관계를 유지했고, 훗날 최순실로 이어지는 그림자는 계속되었다.
박근혜는 김재규의 거사 이후에도 최태민과의 관계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치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까지도 최태민의 조언을 받았고, 그의 딸 최순실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이 관계는 훗날 박근혜 정부의 몰락으로 이어졌고, 국정농단 사건의 중심이 되었다.
김재규는 사형 직전 “근혜를 위해 기도해달라. 괜히 나 때문에 고아가 됐으니”라고 말하며 박근혜를 걱정했다. 그는 최태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박근혜의 앞날을 염려했고, 그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