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꿰맴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천을 꿰매며 침묵했고, 부친은 고문 후유증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들의 삶은 국가에 찢긴 기억이었다. 나는 그 실을 물려받았다. 바늘은 손에 익었고, 천은 내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꿰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보고, 말하고, 기록하고 싶었다. 내 눈으로 꿰매고 싶었다.
열여덟, 나는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면접은 무난했고, 체력검정도 통과했다. 그러나 최종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가족 이력상, 보안상 문제가 있습니다.” 그 말은 내 존재를 부정했다. 나는 총을 들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천을 꺼냈다. 고모부의 이름, 조부의 이름, 내 이름을 꿰맸다. 그리고 이렇게 수놓았다. “나는 꿰맴의 후손이다. 나는 총을 들지 못했지만, 실을 잡는다.”
학교는 감옥 같았다. 나는 말이 없었고, 친구는 없었다. 선생님은 내 눈을 피했고, 나는 책 속에 숨었다. 문학은 피난처였다. 황지우의 시, 김수영의 분노, 카프카의 침묵. 나는 그들의 문장을 천에 꿰맸다. “불안, 고독, 기억, 꿰맴.” 음악은 숨통이었다. 밤이면 이어폰을 꽂고 바흐의 첼로를 들었다. 그 선율은 조부의 천 같았고, 아버지의 외침 같았다. 나는 눈을 감고 꿰맸다. 음표 하나하나에 이름을 수놓았다. “민철, 형섭, 어머니.” 운동은 탈출이었다. 달리면 생각이 멈췄고, 숨이 가빠지면 고통이 사라졌다. 나는 뛰었다. 운동장 끝에서 끝까지, 마치 과거에서 미래로 달리는 듯이. 하지만 도착점은 없었다. 그저 꿰맴만 있었다.
나는 철학과에 가고 싶었다. 존재를 묻고 싶었고, 정의를 꿰매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말했다. “철학은 밥이 안 된다.” 그 말은 칼 같았고, 나는 꿰맬 수 없었다. 철학과 원서를 찢었고, 경영학과에 지원했다. 그건 타협이었다. 아니, 패배였다. 재수는 그 패배를 반복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독서실에서 철학책을 읽었다. 원서는 경영학과였지만, 마음은 여전히 사르트르였다. 존재는 불안했고, 나는 불안했다. 합격자 발표 날, 나는 천을 꺼냈다. 그 위에 ‘경영’이라는 단어를 꿰맸다. 실은 떨렸고, 바늘은 무뎠다.
대학교는 낯설었다. 강의실은 숫자와 그래프로 가득했고, 나는 그 속에서 길을 잃었다. 교수는 수익을 말했고, 나는 손실을 생각했다. 친구들은 취업을 이야기했고, 나는 존재를 묻고 싶었다. 나는 도서관으로 갔다. 경영학 교재 옆에 철학서를 숨겨 읽었다. 그건 저항이었다. 작고 조용한 꿰맴이었다. 술은 빠르게 늘었다. 처음엔 회식 자리에서 한 잔이었고, 이젠 혼자 마시는 병이 되었다. 술은 나를 무디게 했고, 무딘 나는 덜 아팠다. 담배는 친구였다. 불을 붙이면 생각이 정리됐고, 연기를 내뱉으면 고통이 흩어졌다. 병증은 조용히 다가왔다. 밤이면 민철이 내게 말을 걸었고, 낮에는 조부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웃었고, 울었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였고,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의사는 ‘조현형 정신증’이라 말했다. 나는 그 말도 꿰맸다. “정신의 찢김, 꿰맴의 유전.”
나는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침묵하는 교단, 부패한 권력, 외면하는 언론. 뉴스는 사건을 보도했지만, 이름은 지웠다. 그들은 숫자를 말했고, 나는 얼굴을 기억했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내가 꿰맨 이름들, 내가 본 찢긴 장면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꿰맴이었다. 단어 하나하나가 실이었고, 문장이 바늘이었다. 나는 기록했다. 정신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예편당한 군인들, 고문 후유증으로 말을 잃은 이들. 그들은 말하지 않았고, 나는 그 침묵을 꿰맸다. 그들의 이야기는 문장으로 이어졌고, 그 문장은 천이 되었다. 나는 그 위에 이름을 수놓았다. 그것은 회복이 아니라 증언이었다. 나는 혼자였다. 하지만 실은 끊어지지 않았다. 밤이면 천을 꺼냈고, 낮에는 글을 썼다. 누군가는 나를 병자라 했고, 누군가는 나를 작가라 했다. 나는 둘 다였다. 찢긴 정신과 꿰매는 손. 그것이 나였다.
나는 꿰맴을 철학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것은 치료가 아니었고, 예술도 아니었다. 그건 저항이었다. 침묵한 자들의 이름을 꿰매는 일. 지워진 기억을 실로 되살리는 일. 나는 꿰맴을 통해 존재를 증명했고, 세상을 향해 말했다. “나는 꿰맨다. 너희가 찢은 것을, 나는 꿰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