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이 갈라버린 사랑

by 김작가a

꿰맴의 유산

수연, 꿰맴의 첫 사랑

도서관의 오후는 늘 조용했다. 나는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펼쳐놓고, 문장 하나하나를 천 위에 꿰매듯 읽고 있었다. 그날, 그녀가 다가왔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맞죠?” 그녀의 말은 내 숨겨진 언어를 알아본 첫 사람이었다. 수연. 심리학을 전공하던 여학생. 그녀는 말이 많았고, 나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웃었고, 나는 꿰맸다. 우리는 그렇게 이어졌다.

우리는 책으로 대화했고, 음악으로 연결되었으며, 침묵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나의 병증을 이해하려 했고, 나는 그녀의 상처를 꿰맸다. 그녀는 내 꿰맴을 ‘심리적 저항’이라 불렀고, 나는 그녀의 말에 실을 얹었다. 우리는 서로의 결을 읽었다.

밤이면 나는 천을 꺼냈고, 그녀는 내 곁에 앉아 조용히 바라보았다. 나는 실로 문장을 수놓았다. “불안은 존재의 그림자다.” 그녀는 그 문장을 읽고, 내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따뜻했고, 나는 찢긴 내면을 꿰맬 수 있을 것 같았다.

1년간 우리는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사랑은 고요한 물처럼 흘러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멈췄다. 그녀는 유학을 떠났다. 나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천에 그녀의 이름을 꿰맸다. ‘수연’. 그 실은 푸르고, 바늘은 떨렸다.

내 동생, 꿰맴의 유전

내 남동생은 조용한 사람이었다. 말이 없었고, 눈빛이 깊었다. 어릴 적부터 그는 나를 따라했다. 내가 책을 읽으면 그도 책을 읽었고, 내가 꿰매면 그도 실을 잡았다. 우리는 말없이 이어진 형제였다.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천을 꺼냈다. “형, 나도 꿰매고 싶어.” 나는 놀랐고, 동시에 안도했다. 누군가 나의 찢김을 이해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우리는 함께 꿰맸다. 그는 자신의 환상을 꿰맸고, 나는 나의 기억을 꿰맸다. 우리는 서로의 실을 엮었고, 바늘을 나눴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이었다. 밤마다 그는 혼잣말을 했고, 천 위에 낯선 기호를 꿰맸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고, 병원으로 데려갔다. 정신병동의 문은 무거웠다. 의사는 말했다. “조현형 정신증입니다. 입원이 필요합니다.”

나는 그 말도 꿰맸다. ‘형제, 병, 꿰맴의 유전.’ 병동의 창문은 작았고, 침대는 차가웠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나는 그의 이름을 천에 수놓았다. ‘민철’. 실은 붉었고, 바늘은 흔들렸다.

수연의 병문안, 꿰맨 침묵

수연은 병문안을 왔다. 병동의 복도는 조용했고, 그녀는 꽃을 들고 있었다. 내 동생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질 거야. 꿰맴은 이어져 있으니까.”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천을 꺼냈다. 그녀의 손, 그의 눈, 병동의 창문. 나는 꿰맸다. ‘사랑, 병, 침묵, 꿰맴.’

그날 밤, 나는 병원 옥상에 올랐다. 바람은 차가웠고, 기억은 무거웠다. 조부의 침묵, 아버지의 고통, 나의 병, 동생의 입원. 실은 모두 같은 색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실을 그녀에게 넘길 수 있을까?” “이 꿰맴을 그녀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녀는 따뜻했고, 나는 찢겨 있었다. 그녀는 살아 있었고, 나는 병들어 있었다. 나는 결혼을 꿰맬 수 없었다. 사랑은 있었지만, 유전은 더 깊었다. 나는 그녀를 꿰맬 수 없었다. 그녀를 찢고 싶지 않았다.

꿰맴의 단절, 수연의 흔적

수연의 병문안 이후, 나는 며칠간 병동을 떠나지 못했다. 내 동생은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의 눈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천을 꺼내 그의 이름을 꿰맸다. ‘민철’. 실은 떨렸고, 바늘은 무뎠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고, 숨은 짧았다. “내 동생도… 입원했어.” 나는 말을 잃었다. 그녀의 남동생, 법대를 다니던 그 조용한 청년. 말수가 적고, 눈빛이 깊었던 그. 그가 같은 병증으로 병동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내 꿰맴을 멈추게 했다.

나는 병원을 찾았다. 그녀의 동생은 다른 병동에 있었다. 수연은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붉었고, 손은 떨렸다. 우리는 말없이 병실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또 다른 ‘민철’이 있었다. 침묵하는 청년, 찢긴 정신, 꿰맴의 유전.

그녀는 말했다. “이게… 우리 가족의 운명일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을 꺼냈다. 그녀의 동생 이름을 꿰맸다. ‘수연의 동생’. 실은 검었고, 바늘은 깊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생각했다. 내 동생, 그녀의 동생, 나. 세 사람의 꿰맴은 같은 실로 이어져 있었다. 그 실은 유전이었고, 고통이었고, 침묵이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실을 끊을 수 없었다.

나는 결혼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미래는, 그녀에게 또 다른 병동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를 꿰맬 수 없었다. 그녀를 찢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수연, 너는 내 인생에 가장 깊은 감명을 남긴 사람이야. 너는 내 꿰맴을 이해했고, 내 침묵을 꿰맸어. 너와 함께한 시간은 실보다 단단했고, 바늘보다 따뜻했어. 하지만 나는 너를 꿰맬 수 없어. 너를 찢지 않기 위해, 나는 떠날게.”

그녀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병동 창가에 꽃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그 꽃은 붉었고, 조용했다. 나는 그 꽃을 천에 꿰맸다. ‘수연’. 실은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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