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 서울. 청와대 앞마당에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다. 김대중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연단에 섰다. 그의 손은 떨렸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연설문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그가 말한 첫 문장은 전 국민의 심장을 울렸다. “우리는 북한을 적이 아닌 동포로 대할 것입니다.” 그 말은 남쪽의 방송 전파를 타고 북쪽으로 흘러들었다. 평양 봉화각의 깊은 방, 김정일은 화면 속 김대중을 응시하며 담배를 문다. 연기는 천천히 천장을 향해 흘렀고, 그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 자, 진심일까?” 그는 김대중을 오래 지켜봐 왔다. 납치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남조선의 야당 지도자. 감옥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그 남자. 이제는 대통령이라니. 김정일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남자, 위험하다. 그러나 흥미롭다.” 그는 김대중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1973년 도쿄에서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되었고, 1980년 광주항쟁 이후 사형선고를 받았던 인물. 그러나 살아남았다. 그리고 돌아왔다. 김정일은 그런 사람을 경계했다. 동시에 존중했다. “그는 죽음을 넘었지. 그런 자는 쉽게 꺾이지 않아.”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 김대중이 내렸다. 예상과 달리 김정일은 직접 나왔다. 인민군 육해공군 의장대가 도열했고, 두 사람은 악수했다. 그 악수는 분단 이후 처음이었다. 백화원 초대소. 두 지도자는 마주 앉았다. 김정일은 먼저 말을 꺼냈다. “대통령께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김대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1992년, 우리는 미국에 특사를 보냈습니다. 김용순 비서를 통해 ‘미군이 계속 남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남북 간 전쟁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김대중은 놀랐다. 북한이 미군 주둔을 요청했다니. 김정일은 말을 이었다. “중국, 일본, 러시아… 우리를 먹으려 했던 나라들입니다. 미군은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김대중은 조용히 말했다. “민족 문제에 그처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계실 줄 몰랐습니다.” 김정일은 담배를 꺼내며 웃었다. “하지만 우리 인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미국이 원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겉으로 반미전선을 유지해야 합니다.” 김대중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반미 구호는 내부용입니까?”
김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인민을 달래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이 믿는 적이 있어야 단결합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현실을 봐야 합니다.”
회담은 2시간을 넘겼다. 김정일은 화제를 이리저리 몰고 다녔다. 그러나 논지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한반도 문제는 외세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김대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그러나 주변국의 협력은 필요합니다. 미국은 그 중심입니다.” 김정일은 웃었다. “대통령께서 통일이 돼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지요. 그것은 제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김대중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 생각보다 깊다. 그리고 현실적이다.’
김대중은 햇볕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는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인내와 설득을 택했다. 김정일은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민간 교류가 시작됐다. 그러나 그 속에는 긴장도 있었다. 김정일은 미국을 두려워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편지를 받고 기뻐했고,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방북에 아리랑 공연을 열었다. 김대중은 이를 지켜보며 말했다. “북한은 외교를 통해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그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김대중은 중국, 러시아, 미국과의 관계를 조율하며 북한을 설득했다. 김정일은 이를 지켜보며 경계했다. 그러나 동시에 존중했다. “대통령께서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계십니다. 우리도 그 균형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김대중은 말했다. “우리는 민족의 미래를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분단은 고통입니다. 그러나 평화는 선택입니다.”
2000년 6월 15일, 6·15 공동선언이 발표됐다. 두 지도자는 손을 맞잡았다. 그 악수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AP통신은 이를 세계 10대 뉴스 중 하나로 선정했다. 김정일은 서울 방문을 약속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국제 정세는 급변했고, 북한은 다시 고립으로 돌아갔다. 김대중은 회고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용한 사람입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미군 주둔 발언이었습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습니다.”
2009년, 김대중은 세상을 떠났다. 김정일은 조용히 그를 추모했다. 공식적인 조문은 없었지만, 북한은 조의를 표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정치적 협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반도의 운명을 둘러싼 철학적 대화였다. 김대중은 믿었다. “평화는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김정일은 속으로 되뇌었다. “이 남자, 나와 닮았다. 그러나 너무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