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전체주의 통수권자들

by 김작가a

강철의 그림자

– 다큐적 서사로 풀어낸 권력의 구조와 기억의 정치

한강과 베를린 사이

서울, 1974년. 한강변을 따라 고속도로가 뻗어가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가난을 이겨냈고, 이제는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이 길은 우리 민족의 생명선이다.” 그의 말은 마치 1933년 히틀러가 독일 국민에게 한 연설을 떠올리게 했다. “독일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우리는 굴욕을 씻고, 민족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국가의 재건을 ‘민족의 운명’으로 포장했다. 이 책의 화자는 가상의 역사학자 ‘이도현’. 그는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연구하며 전체주의 통수권자들과의 유사성을 발견한다.

권력의 탄생 – 쿠데타와 카리스마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쿠데타 직후 발표된 성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우리는 이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총을 들었다. 부패와 무능을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것이다.” 히틀러는 1933년,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계기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를 이유로 헌법을 정지시켰다. 무솔리니는 1922년 로마로 진군하며 왕에게 총리직을 요구했고, 스탈린은 당내 숙청을 통해 권력을 집중시켰다. 공통점은 명확했다. ‘비상사태’와 ‘적의 존재’를 통해 권력을 정당화하고, 헌법을 무력화했다.

국민 만들기 – 교육과 선전

1972년, 박정희는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나는 얼을 오늘에 되살려…” 이 헌장은 전국 학교에 게시되었고, 학생들은 매일 암송했다. 교련과 학도호국단은 군사훈련을 통해 ‘국민’을 ‘전사’로 만들었다. 히틀러는 히틀러 유겐트를 통해 청소년을 군사적·이념적으로 훈련시켰다.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청년단을 조직했고, 스탈린은 코민테른 교육을 통해 ‘사회주의 인간’을 양성했다.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은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라는 노래로 시작되었다. 이는 전체주의의 핵심인 ‘국민의 국가화’를 보여준다.

적의 창조 – 반공과 인종주의

박정희는 반공을 통치의 핵심 이념으로 삼았다. 그는 1975년 연설에서 말했다. “공산주의는 이 나라를 파괴하려는 악의 세력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독일의 적’으로 규정했고, 무솔리니는 슬라브인을, 스탈린은 트로츠키주의자와 지식인을 숙청했다. 박정희의 중앙정보부는 반공을 이유로 수많은 인권 탄압을 자행했다. 김대중 납치 사건(1973), 장준하 의문사(1975)는 그 대표적 사례다. 전체주의는 ‘적’을 통해 국민을 결속시키고, 통제를 강화한다.

경제와 통제 – 기적과 착취 사이

박정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산업화를 추진했다.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중화학공업은 그의 대표적 성과였다. 그는 1973년 연설에서 말했다. “우리는 가난을 이겨냈다. 이제는 기술과 산업으로 세계와 경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절미운동, 혼분식 강요, 여성 관광기생 산업 등 국가 주도의 통제가 있었다. 히틀러는 군수산업을 통해 실업을 해소했고, 무솔리니는 기업국가를 만들었으며, 스탈린은 5개년 계획으로 농민을 집단화했다. 박정희의 경제는 ‘기적’이었지만, 동시에 ‘국가에 의한 착취’였다.

종말과 기억 – 유신의 붕괴와 역사적 평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암살당했다. 유신체제는 붕괴했고, 한국은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다. 히틀러는 자살했고, 무솔리니는 처형당했으며, 스탈린은 자연사했다. 박정희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산업화의 영웅’과 ‘독재자’라는 이중적 평가를 받는다. 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그가 남긴 전체주의적 유산을 보여준다. 히틀러는 전범으로 기억되며, 무솔리니는 파시즘의 상징으로, 스탈린은 공포의 통치자로 남았다. 박정희는 그들보다 온건했지만, 전체주의적 요소를 분명히 공유했다.

기억의 정치와 권력의 유산

박정희는 한국을 산업화시켰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전체주의적 통치 방식과 닮아 있었다. 국민교육헌장, 새마을운동, 중정의 통제, 반공 이데올로기, 경제 통제는 모두 ‘국가가 개인을 지배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은 극단적 전체주의자였다. 박정희는 그보다는 온건했지만, ‘국가주의적 통수권자’로서 유사한 방식으로 국민을 통제했다. 이도현은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쓴다. “우리는 박정희를 기억해야 한다. 산업화의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전체주의의 유산을 남긴 통치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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