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그리고 침묵
1997년 3월, 서울. IMF의 그림자가 도시를 뒤덮고, 사람들은 돈보다 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나는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진단명은 ‘우울증과 망상적 사고’. 그러나 나는 그것을 ‘철학적 과잉’이라 불렀다. 이곳에서 나는 민주화의 기억을 되짚고, 키르케고르와 니체, 사르트르와 대화하며 새로운 철학을 정립해나간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미래를 준비한다. “당신은 너무 많이 생각해요.” 의사의 말은 칼 같았다. 나는 침묵했다. 침묵은 나의 저항이었다. 병동의 벽은 하얗고, 내 머릿속은 검었다. 나는 노트를 꺼내 첫 문장을 썼다. ‘나는 병든 시대의 산물이다.’
밤마다 나는 키르케고르와 대화했다. 그는 말했다. “절망은 인간이 신 앞에서 자신을 잃는 방식이다.” 나는 물었다. “그럼, 민주주의 앞에서 자신을 잃은 나는 무엇인가?” 그는 웃었다. “그건 네가 아직 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지. 혹은, 너 자신을 신처럼 믿었기 때문이야.” 나는 노트에 적었다. ‘절망은 철학의 시작이다. 그리고 철학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어느 날, 나는 니체를 만났다. 그는 병동의 복도에서 망치를 들고 있었다. “너는 아직도 도덕에 기대고 있군.” 나는 반박했다. “나는 정의를 믿어요.” 그는 웃었다. “정의는 약자의 복수일 뿐이야. 너는 스스로를 초인으로 만들 준비가 되었는가?” 나는 노트에 적었다. ‘민주화는 초인의 탄생을 위한 고통이었다. 우리는 체제를 부수었지만, 자신은 부수지 못했다.’
사르트르는 내 침대 끝에 앉아 있었다. “자유는 형벌이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너는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를 어떻게 쓸지 몰랐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민주주의를 원했지만, 그 안에서 길을 잃었어요.” 그는 말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너는 아직 너 자신을 창조하지 않았어.” 나는 노트에 적었다. ‘나는 민주주의를 창조하려 했지만, 나 자신을 창조하지 못했다. 이제 나는 나를 쓰기 시작한다.’
1987년, 명동. 최루탄과 함성, 그리고 친구의 죽음. 우리는 민주주의를 외쳤고, 그것을 얻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그 민주주의는 IMF 앞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노트에 적었다. ‘민주주의는 제도보다 기억이다. 우리는 기억을 잃었고, 그래서 다시 병들었다.’
병동은 조용했다. 침대는 하얗고, 벽은 회색이었다. 나는 매일 노트를 꺼내 철학을 썼다. ‘정신의 자유는 육체의 감금 속에서 태어난다.’ ‘민주주의는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능력이다.’ ‘기억은 가장 오래된 혁명이다.’ 간호사는 내 글을 읽고 말했다. “선생님, 이건 책이 될 수 있어요.” 나는 웃었다. “책이 되기 전에, 나 자신이 되어야 해요.”
나는 병동에서 새로운 철학을 정립했다. 이름하여 ‘기억의 실존주의’. 핵심은 이렇다.
인간은 기억을 통해 실존한다.
정치는 기억의 제도화다.
철학은 기억을 복원하는 기술이다.
나는 병동의 동료들에게 강연을 열었다. 청중은 다섯 명. 그들은 울었고, 나는 울었다. 그날 나는 작가가 되었다.
나는 『침묵의 방에서 태어난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원고를 썼다. 출판사에 보냈고, 편집자는 말했다. “이건 시대의 고백입니다.” 나는 웃었다. “이건 나의 탄생입니다.”
1997년 12월, 나는 퇴원했다. IMF는 여전히 거리를 지배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아팠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나는 철학을 가졌고, 글을 가졌고, 기억을 가졌다. 나는 노트에 마지막 문장을 썼다. ‘나는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기록한다. 이 시대를, 나 자신을, 그리고 너를.’
“절망은 철학의 시작이다.” – 키르케고르
“정의는 약자의 복수다.” – 니체
“자유는 형벌이다.” – 사르트르
“민주주의는 기억이다.” – 나
“철학은 기억을 복원하는 기술이다.” – 나
이제 나는 작가다. 철학자다. 그리고 시대의 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