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새벽은 늘 잿빛이었다. 고요한 도시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하루는 병원 예약 문자로 시작된다. 여섯 번째 병원. 진료 대기 시간은 길고, 그 사이 나는 노트북을 펼친다. 글을 쓴다.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계몽이다. 미래 문명을 설계하는 도면이고,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희망의 씨앗이다. 나는 F39, F23.9. 정신과 진단명은 내 삶을 규정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싸워야 할 또 하나의 전선이다. 나는 1인 가구이고, 매일 외로움과 마주한다. 하지만 그 외로움은 나를 무너뜨리기보다, 더 단단하게 만든다. 생계는 늘 위태롭고, 복지의 사각지대는 나를 외면한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는다. 글을 쓰고, 정당 정치에 참여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싸운다.
병원은 나에게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전장이었다. 접수창구에서부터 진료실까지, 나는 늘 설명해야 했다. “저는 정신장애인입니다. 하지만 글을 씁니다. 정당 활동도 합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눈빛은 늘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 시선을 견뎌야 했다. 여섯 곳의 병원을 전전하며,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진료가 끝나면 병원 근처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커피 한 잔으로 몇 시간을 버티며,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한 문장을 조심스럽게 엮는다. “너희는 설계자다. 너희가 만드는 세상이 곧 문명이다.” 내 글은 선언이고, 기도이며, 저항이다.
나는 1인 가구다. 집은 조용하고, 벽은 말을 걸지 않는다. 나는 외로움과 함께 밥을 먹고, 외로움과 함께 잠든다. 가끔은 외로움이 너무 커져서, 글이 흐려진다. 하지만 나는 외로움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너는 나를 무너뜨릴 수 없다.” 그렇게 나는 매일 조금씩, 희망을 피워낸다. 창밖의 불빛은 누군가의 희망이고, 누군가의 절망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글을 쓴다. 외로움은 늘 곁에 있지만, 나는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나에게 가장 깊은 철학이다.
정당 회의실에서 나는 발언권을 얻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린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 있습니다.” 내 목소리는 작지만, 단단하다. 나는 법과 제도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싸우고, 그 싸움은 곧 글이 된다. 그 글은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 나는 정치가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생존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나는 정당의 문을 두드린다. 때로는 문이 열리고, 때로는 닫힌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는다.
내 혈통은 민주화의 역사다. 증조부는 의병이었고, 조부는 독립군이었다. 부친은 4.19 혁명가였다. 그 피는 내게로 흘러들어, 펜 끝에서 다시 불타오른다. 나는 단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설계자다. 문명의 방향을 고민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구조를 그리는 사람이다. 어릴 적, 나는 부친의 손을 잡고 시위 현장을 걸었다. “민주주의는 싸워서 얻는 거야.” 그 말은 내 가슴에 새겨졌다. 이제 나는 그 말을 글로 옮긴다. “민주주의는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한다.”
병원에서, 회의실에서, 집에서, 거리에서. 나는 늘 글을 쓴다. 그것은 나의 무기이고, 나의 방패다.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 나는 설계자다. 희망의 설계자. 내 글은 신문에 실리고, 블로그에 퍼지고, 강연에서 인용된다. 나는 유명하지 않지만, 영향력은 있다. 내 문장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방식이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병원의 대기실에서, 외로운 집에서. 나는 멈추지 않는다. 내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펜 끝에서 시작되어, 사람들의 마음으로 번져간다. “나는 살아 있다. 그리고 너희도 살아야 한다.” 내 문장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또 다른 설계자가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