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균열

by 김작가a

유전의 그림자

서울의 봄은 늘 아름다웠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바람은 부드럽게 불었다. 하지만 1960년의 봄은 피로 물들었다. 그해 4월, 내 아버지는 거리 한복판에 있었다. 그는 손에 피켓을 들고, 입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다. 군홧발이 그를 짓밟았고, 고문이 그의 신경을 찢었다. 나는 그 봄 이후에 태어났다. 아버지의 상처는 유전처럼 내게 전해졌다. 의사들은 내 상태를 F39, F23.9라 불렀다. 우울성 정신병. 급성 정신병적 장애. 차가운 숫자와 분류표가 내 삶을 설명하려 했지만, 그것은 내 감각을 담아내지 못했다.

어릴 적 나는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사람들의 말이 겹쳐 들렸고, 시간은 늘 비틀렸다. 감정은 나를 압도했고, 현실은 자주 꿈처럼 흔들렸다. 나는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일상이었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의 침묵은 집안 전체를 감쌌다. 그는 밤마다 창문을 닫고, 불을 끄고, 혼잣말을 했다. 나는 그 말들을 들었다.

“그들이 다시 온다.” “나는 아직 그날에 있다.” 그의 과거는 현재를 삼켜버렸고, 나는 그 잔해 속에서 자아를 찾으려 애썼다. 아버지의 눈빛은 늘 멀리 있었다. 그의 손은 떨렸고, 그의 숨은 얕았다. 나는 그를 이해하려 했지만,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그의 서랍에서 낡은 노트를 발견했다. 그 안엔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그 문장을 읽고 나는 울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그 문장이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은 나에게 유전된 것이 아니라, 전해진 것이었다. 그것은 유전자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도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눈빛에서, 그의 손 떨림에서, 그의 무언의 고통에서 그것을 배웠다. 그리고 어느 날, 나도 그 세계로 들어갔다.

병동의 문을 넘다

입원은 갑작스러웠다. 현실이 무너졌고, 나는 병동의 문을 넘었다. 그곳은 또 다른 세계였다. 시간은 멈췄고, 이름은 사라졌으며, 감정은 날것으로 드러났다. 나는 그곳에서 나를 다시 만났다. 아니, 처음으로 진짜 나를 본 것 같았다. 병동의 하루는 반복과 침묵으로 이루어졌다. 아침 6시, 약을 먹고, 식사를 하고,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오후엔 상담이 있었고, 저녁엔 다시 약. 밤이 되면 환청이 찾아왔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누군가 내 생각을 훔쳐갔다. 나는 그들과 싸웠고, 때로는 그들에게 졌다.

동료 환자들은 각자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어떤 이는 자신이 대통령이라 했고, 어떤 이는 매일 죽은 아내와 대화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묘한 연대감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부서진 존재였고, 그 부서짐 속에서 서로를 알아봤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시간이었다. 병동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시계는 있었지만 의미가 없었다. 하루가 일주일 같았고, 일주일이 한 달 같았다. 나는 그 시간 속에서 글을 썼다. 벽에, 종이에, 마음에. 글은 나를 붙잡아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어느 날, 상담사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글을 통해 살아남고 있어요.” 그 말은 나를 울렸다. 나는 살아남고 있었다. 글로, 문장으로, 기억으로.

낙인의 도시

퇴원 후의 서울은 낯설었다. 사람들은 바쁘게 걸었고, 나는 그들 사이에서 멈춰 있었다. 나는 다시 걷는 법을 배워야 했다. 사람을 만나는 법, 감정을 조절하는 법, 현실을 믿는 법. 그것은 재활이 아니라 재탄생이었다. 지역사회 기반 사례관리사와 함께 일상을 회복했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했고,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했다. 그것은 쉽지 않았지만, 가능했다.

가장 큰 장애물은 낙인이었다. “정신병자”라는 단어는 칼처럼 날카로웠다. 나는 그 단어에 찔렸고, 피를 흘렸다. 그러나 나는 그 피로 글을 썼다. 정신질환은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받아야 할 것이었다. 나는 글을 통해 나를 설명했고, 세상을 이해했다. 독자들은 그 글에서 자신을 봤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 부서져 있었고, 그 부서짐 속에서 연결되었다.

다시 쓰는 나

작가로서의 삶은 낯설고도 익숙했다. 나는 정신질환을 겪은 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찾았다. 그것은 회복이 아니라 재창조였다. 정신질환은 나를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나를 깊게 만들었다. 나는 그 경험을 글로 옮겼고, 독자들은 그 글에서 자신을 봤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 부서져 있었고, 그 부서짐 속에서 연결되었다. “정신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것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고, 새로운 언어를 주었다. 나는 그 언어로 나를 설명했고, 세상을 이해했다.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누군가를 걱정하고 있거나, 스스로를 이해하려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정신질환은 고립을 부르지만, 그 고립 속에서도 연결은 가능하다. 나는 병동에서 그것을 배웠고, 퇴원 후에 그것을 실천했다. 이해는 치료의 시작이다. 가족과 친구가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할 때, 환자는 회복의 길로 나아간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려 했고, 나를 이해받으려 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가치 있었다. 정신건강은 모두의 문제다. 이 사회는 더 이상 정신질환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두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 마음은 때로 부서진다. 그러나 부서진 마음도 다시 붙일 수 있다. 글로, 말로, 손길로. 나는 이 글을 통해,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정신질환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해와 공감에서 비롯된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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