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9회 사법시험을 함께 통과했다. 서울대 법대, 고려대 법대, 연세대 법대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은 1980년대의 격동 속에서 법을 배웠고, 사법연수원에서 함께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검사로, 판사로, 변호사로 흩어졌지만, 그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법이라는 언어로 세상을 이해했고, 권력이라는 구조를 익혔다. 윤석열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검사로서의 길을 걸었고, 권력과 충돌하며 이름을 알렸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검찰청을 넘어 국민의 귀에 닿았다. 그는 정치인이 아니었지만, 정치적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2022년,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첫 인사는 검사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법무부 장관 한동훈,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대통령실 민정수석 이원석. 모두 검사 출신이었다. 그들은 9회 사법시험 동기거나, 검찰 내에서 함께 일했던 인물들이었다. 법무부는 검찰을 감독하는 기관이 아니라, 검찰의 후방기지처럼 기능하기 시작했다. 대변인, 감찰관, 인사라인, 기조실장, 차관까지 모두 검사 출신으로 채워졌다. 외청인 검찰청은 법무부의 그림자였고, 법무부는 검찰의 확장판이었다. 행안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찰을 지휘하고, 지방행정을 총괄하는 행안부는 검찰 출신 장관의 지휘 아래, 수사 중심의 조직으로 재편되었다. 경찰의 독립성은 흔들렸고, 수사권 조정은 검찰 중심으로 회귀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사를 통해 권력의 철학을 드러냈다. 그는 검찰을 신뢰했고, 검찰 출신 인사들을 중용했다. 대통령실, 국정원, 감사원, 방송통신위원회, 권익위원회,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까지 검사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검찰의 정보수집 통로인 파견 검사와 수사관들은 법무부는 물론 방송통신위,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교육부 등 정부 각 부처에 대거 파견되었다. 그 숫자는 집권 초에 비해 급격히 늘어났고, 정부는 검찰 중심의 구조로 재편되었다. 검사 출신 인사들은 단지 법률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권력의 설계자였고, 통치의 기술자였다. 그들의 언어는 법률 용어였고, 그들의 판단은 수사 논리였다. 정치의 감정은 배제되었고, 행정의 논리는 사법의 구조로 대체되었다.
검찰 출신 인사들의 영향력은 국내를 넘어 해외로 확장되었다. 미국, 일본, 중국, LA 총영사관 등 주요 해외 공관의 파견 인력 역시 검사 출신이 독점했다. 외교는 검찰 엘리트 라인의 경력 관리용 자리로 변질되었고, 외교 역량은 기득권 국가에 집중되었다. 캄보디아, 동남아, 아프리카 등 신흥 전략국과의 경제·사법 협력은 외면되었고, 검사 출신 인사들은 교육 여건과 생활 편의가 보장된 국가에만 파견되었다. 외교는 전략이 아니라, 인사의 연장이 되었다. 법무부는 검찰 조직을 관리·감독하는 기관이 아니라, 검찰의 외교·인사 후방기지가 되었다. 검찰은 단지 수사기관이 아니라, 권력의 설계자가 되었다.
검사 출신 인사들이 권력기관을 장악한 것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법치주의의 강화로 볼 수 있다. 법률에 근거한 통치, 절차적 정당성의 확보, 인권의 보호 등이 기대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의 집중과 폐쇄성이라는 위험도 존재한다. 검사 출신 인사들은 내부 네트워크를 통해 권력을 공유하고, 외부의 비판에 둔감할 수 있다. 사법 권력은 때로는 정치적 중립성을 잃고,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시민들은 이 인사를 어떻게 바라볼까? 일부는 사법개혁의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 검찰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고, 법무부의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들이 배치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른 일부는 권력의 집중을 우려한다. 검사 출신 인사들이 권력기관을 장악함으로써, 권력의 다양성과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하나의 시대를 열었다. 그것은 검찰 중심의 권력 구조였고, 법치주의의 강화였다. 그러나 그 시대는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통치받기를 원하는가? 법의 이름으로, 혹은 국민의 이름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의 길을 걸어 대통령의 문을 열었다. 그는 권력의 중심에 섰고, 그 권력을 법의 구조로 설계했다. 그러나 그 구조가 국민의 삶을 담아낼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의 정부는 평가받고 있다. 정책의 실효성, 인사의 적절성, 외교의 방향성. 그리고 그 평가는 단지 수치가 아니라, 시대의 기록이다. 윤석열 정부는 하나의 권력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강인했지만, 때로는 고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