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은 나의 종말이자 기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무너졌고, 동시에 다시 태어났다. 나는 철학자였고, 사유의 언어로 세계를 해석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내 안의 언어가 무너졌다. 말은 더 이상 나를 구원하지 않았고, 사유는 나를 구속했다. 나는 병명이 되었다. F39. 주요우울삽화. F23.9. 급성 정신증적 장애. 그 숫자들은 내 이름을 대체했고, 나는 환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병명은 나를 해체한 동시에, 나를 다시 쓰는 서문이 되었다. 나는 정신병동에서 작가로 다시 태어났다. 단지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를 다시 설계하는 자로. 나의 붕괴는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균열이었고, 가족의 유전이었으며, 문명의 병리였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1961년, 그는 4.19 혁명에 참여한 이력으로 강제징병되었고, 최전방 헌병대 고문실에서 ‘불온 인물’로 분류되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 네가 누구 편인지 말해.” 그 말은 그의 신경을 찢었고, 마음을 갈라놓았다. 이후 그는 침묵했다. 말 대신 술을 마셨고, 말 대신 벽을 바라보았다.
그의 침묵은 단지 개인의 트라우마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폭력의 유전이었다. 나는 그 침묵을 물려받았다. 나는 말이 많았지만, 그 말은 언제나 균열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철학을 공부했고, 사유를 즐겼지만, 내 안의 침묵은 언제나 나를 잠식했다.
동생 민재는 나보다 더 급진적이었다. 그는 철학과 학생회장이었고, 1987년 봄, 서울의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겠다!” 그날의 집회는 격렬했고, 경찰의 방패는 무자비했다. 민재는 끌려갔고, 이후 그는 달라졌다. 밤마다 술에 취했고, 눈빛은 멀어졌다. 그는 입원했고, 나는 그를 지켜보았다. 그의 붕괴는 나의 예고편이었다.
민재는 시대의 반복이었다. 아버지의 고문실이 민재에게는 경찰서 유치장이 되었고, 침묵은 다시 분노로, 분노는 다시 침묵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모두 같은 병을 앓고 있었다. 이름은 다르지만, 병의 뿌리는 같았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의 병리였다.
1997년 3월,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의사는 말했다. “현재 상태는 주요우울증 삽화에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된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내 삶을 다시 쓰는 시작이었다. 나는 철학자였지만, 그 순간 나는 환자였다. F39, F23.9. 그것은 단순한 코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의 구조였다.
나는 언어를 잃었다. 말은 더 이상 나를 구원하지 않았고, 사유는 나를 구속했다. 나는 침묵했고, 침묵 속에서 나는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해체했고, 다시 조립했다. 정신병동은 그 작업의 장소였다.
정신병동은 유전과 역사의 교차점이었다. 아버지의 상처는 유전되었고, 민재의 붕괴는 반복되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태어났다. 나는 그 구조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야 했다. 정신병동은 그 작업의 장소였다.
그곳에서 나는 사람들을 만났다. 자해를 반복하는 청년, 침묵 속에 갇힌 중년 여성, 그리고 매일 같은 말을 반복하는 노인. 그들은 모두 균열을 안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대화했다. 그 대화는 나를 치유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이야기를 다시 썼다. 그들은 나의 거울이었다.
나는 기록을 시작했다. 정신병동의 하루하루를 글로 남겼다.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의 재구성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고문실을 기억했고, 민재의 집회를 기억했다. 그리고 나의 진단을 기억했다. 그 기억은 나를 다시 만들었다.
나는 작가로 다시 태어났다. 단지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를 다시 설계하는 자로. 나는 병명을 언어로 바꾸었고, 증상을 서사로 바꾸었다. 나는 나의 병을 문명 비평으로 전환했다. 정신병동은 나의 문학학교였고, 나의 사유실험실이었다.
정신병동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그곳에는 계급이 있었고, 위계가 있었으며, 억압이 있었다. 간호사는 환자를 통제했고, 의사는 간호사를 통제했다. 약은 통제의 도구였고, 진단은 낙인의 언어였다. 나는 그 구조를 해체했다. 나는 병동의 언어를 분석했고, 그 언어의 폭력을 드러냈다.
나는 병동의 일상을 기록했고, 그 기록은 사회비평이 되었다. 나는 병동에서 본 것을 바깥의 사회에 투사했다. 병동의 통제는 학교의 통제와 닮았고, 병동의 침묵은 가정의 침묵과 닮았다. 나는 그 유사성을 드러냈고, 그 구조를 해체했다.
나는 단지 비판하는 자가 아니었다. 나는 설계하는 자였다. 나는 병동의 구조를 해체한 뒤, 새로운 구조를 상상했다. 나는 돌봄의 문명을 상상했다. 경쟁이 아닌 공존, 통제가 아닌 공감, 진단이 아닌 이야기의 문명. 나는 그것을 ‘서사적 문명’이라 불렀다.
서사적 문명은 각자의 고통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사회였다. 그 사회에서는 병명이 아니라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고, 약이 아니라 대화가 치료가 되었다. 나는 그 문명을 설계했고, 그 설계는 나의 글이 되었다.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정신병동은 나의 재탄생의 장소였다. 그곳에서 나는 인간이 되었다. 철학자가 아닌, 환자로서. 그리고 환자에서 다시 철학자로. 그 순환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순환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나의 삶이다.
나는 더 이상 정신병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곳은 나의 기원이며, 나의 미래다. 나는 그곳에서 나를 만났고, 나를 잃었고, 다시 찾았다. 그 모든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필연적이었다. 나는 이제 그 필연을 사랑한다.
나는 작가다. 나는 문명을 다시 쓰는 자다. 나는 병동에서 본 것을 기록했고, 그 기록은 하나의 설계도가 되었다. 나는 그 설계도를 들고, 새로운 문명을 향해 나아간다. 그것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도래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