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각 복음서에서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특정되어 있지 않은 몇몇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 중의 베타니아의 마리아 등이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동일시되어 예수의 발에 눈물을 떨어뜨려, 스스로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향유를 발랐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그린 성화상에서는 향유 항아리를 손에 든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자코모 다 바라라제의 《황금전설》 등에 따르면,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매춘부 출신으로 한동안 쾌락에 탐닉하다가 예수를 만나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막달레나에게는 창녀도 의미하는 ‘죄의 여자(the Sinner)’라는 별명이 주어지고, 르네상스 이후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회개를 주제로 하는 회화나 조각이 많이 제작됩니다. 이는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창녀를 근거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1400년 가까이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매춘부로 낙인찍혔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591년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창녀였다고 강론했습니다.
이 이미지는 로마 가톨릭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지적되었으며, 1988년에서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사도들의 사도’라고 격상시켰습니다.
예수가 승천한 후, 막달레나는 마르타 등과 함께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로 가서, 만년을 동굴 속에서 은수생활을 하며 보냈다고 하며, 매일 일곱 번씩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녀의 유해는 엑상프로방스 교외의 생 막시망 라 생트 보메(Saint-Maximin-la-Sainte-Baume)에 매장되었다고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 유해(두개골)는 나중에 베즈레이의 성 막달레나 대성당으로 이장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 막시망 라 생트 보메측은 지금도 막달레나의 유해를 보관,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