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여성의 지도력

by 김작가a

옛날에 로마 가톨릭에서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베타니아의 마리아(마르타의 여동생)를 동일 인물로 보았었습니다. 한편 동방 정교회에서는, 이미 베타니아의 마리아는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만년에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사도 요한과 함께 에페소스에서 살다가 죽어, 훗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유해가 이장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파마다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주장이 다릅니다.

또 다른 가설(주장)을 살펴볼까요?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창녀로 바뀐 것은 고대 교회가 조작한 것이며,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지위를 복권해야 한다는 일부 여권주의 수정론자 등의 주장입니다.

예수의 든든한 후원자였으며 최초로 예수의 부활을 지켜본 증인인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창녀의 오명을 쓰게 된 데에는 그가 남성 중심적인 기독교에게 중대한 위협이 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여권주의 수정론자 등이 주장하는 수제자설은 한 외경 복음서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탁월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와 경쟁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녀는 남성들이 중심인 교회에서 질투의 대상이었으며 남성으로 이루어진 성직자들이 여성인 그녀를 창녀로 전락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신약성서의 편찬자들이 거부한 영지주의파 복음서에 근거해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실제로 예수의 친밀한 여성 파트너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후 막달라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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