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여성의 지도력

by 김작가a

마리아는 초기 교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베드로의 라이벌이 됐습니다.

제인 섀버그의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Mary Magdalene)》 같은 책에서 수정론자들은 이 모든 것이 남성 성직자들을 선호한 교부들에 의해 감춰졌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핵심에 성 대결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그녀가 이끄는 사람들이 그 싸움에서 이겼다면 교회의 역사와 구조가 여성을 동등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예수와 결혼을 하였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숨지자 이집트로 도망쳐 예수의 딸인 사라를 낳은 뒤 다시 프랑스프로방스 지방으로 건너갔다고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주장은 2004년 5월 이후 소설다빈치 코드》 등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소설 이전에 헨리 링컨, 리처드 레이, 마이클 배이전트가 공저한 《성혈과 성배》(ISBN-89-54403-42-5)라는 책을 통해 나름대로 가설과 논리, 증거를 제시하며 제기된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에는 신성한 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왕족인 신부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는데, 《요한 복음서》에 기록된 기름 붓는 여인(신부)은 바로 막달라 여자 마리아였습니다.

또한 예수의 추종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던 기간에 예수의 피를 잔에 담아 배를 타고 서유럽으로 가져갔다는 전설도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활용됩니다.

알렉산드리아로 피난한 뒤 더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난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사라는 프로방스로 가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인해 이 지역의 여성들만큼은 중세 시대에 상속권을 인정받아 남성들처럼 많은 봉토와 영지를 소유하는 등 상당한 권리를 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예수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후손이 프랑크 메로빙거 왕조의 왕 메로베크클로비스 1세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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