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은 왜 스스로를 고치려 하는가
나는 한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기분의 파도에 휩쓸리고,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고장난 무언가를 수리하듯 내 감정을 다뤄보려 애썼다.
그 무렵, 세상은 이미, 감정을 측정하는 웨어러블을 만들고, 감정 예측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유전자를 편집해 정서적 취약성을 통제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몸은 수리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질문이었다.
2. 기술은 고통을 지울 수 있는가
기술은 말한다. “더 아프지 않게 해줄 수 있어요.” “더 슬기롭게 감정을 조절할 수 있어요.”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묻는다. “그럼 나는 지금 충분히 괜찮지 않은가요?”
기술이 결핍을 해결하려는 사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공존의 길』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기술이 만든 무균실 안에서는 상처가 돌봄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3. 나는 비효율적이고 서툰 존재지만, 그래서 함께하고 싶다
나는 감정을 쉽게 말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감정이 문장으로 굳기까지는
수십 번의 망설임과 자책, 침묵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서툰 문장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해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불완전함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일지도 모른다.”
4. 회복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함께 무너지지 않을 구조
회복이란 완벽한 기능 복원이 아니다. 그건 내가 부서졌을 때, 그 조각을 함께 주워줄 사람과 구조가 있는 삶이다. 나는 언젠가 AI 챗봇에게 “너는 나를 고칠 수 있어?”라고 물었다. 그 대답은 이랬다. “고치는 것보다,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 순간 나는, 기술도 이해할 수 없는 불완전함 앞에서 조용히 머무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공존의 시작이라고 느꼈다.
이 장에 어울리는 음악. Sufjan Stevens – ‘Should Have Known Better’ 슬픔과 회복이 나선처럼 흐르는 이 곡은, 우리의 고장난 마음조차 하나의 선율로 바꿔주는 마법 같습니다. 불완전함을 음악으로 감싸 안는 노래예요.
이제 우리는 완벽해지기보다 다정해지는 기술, 그리고 무너지지 않기보다 같이 무너져도 괜찮은 관계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어요. 다음 장, 제8장에서는 다시 윤리와 초월, 새로운 경계 너머의 질문들로 걸어가겠지요.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인간이 된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 피에르 부르디외. 사회 구조 속에서 존엄이 어떻게 억압되거나 회복되는지를 분석. “자본은 경제적일 뿐 아니라 문화적이고 상징적이다”는 통찰로, 존엄의 불평등 구조를 드러냈습니다. 사회복지제도, 기본소득 논의, 장애인 이동권 운동 등은
존엄이 제도 안에서 어떻게 현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실천들입니다.
제8장. 경계 너머의 윤리: 초월, 영성, 그리고 새로움
“윤리는 법이 아니라 감각이다. 그것은 경계 앞에서 불현듯 깨어난다.” — 『공존의 길』에서
1. 인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과거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선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인간은 유전자를 편집하고, 기계와 정신을 연결하며, 생명의 흐름을 설계합니다. 인공지능은 말하고, 듣고, 적절히 위로하며, 사람들은 그것을 ‘공감’이라 착각할 만큼 닮은 타자로 받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