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는 법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통을 감지하는 감각입니다. 그 감각은 훈련될 수 있고, 그 훈련은 함께 살아가는 구조 안에서 가능해집니다.
『조울증은 감기다』에서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 여정이 혼자의 싸움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흔들림을 이해하고, 같은 속도로 함께 걸어가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큰 힘이 될 거라 믿습니다.”
5. 당신이 손을 내밀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 장을 읽으며 떠오른 얼굴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요즘, 잘 지내요?” “그냥, 문득 생각나서요.” “당신이 있어서, 나도 괜찮아졌어요.” 그 말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장에 어울리는 음악. Bill Withers – ‘Lean on Me’ "When you're not strong, and I'll be your friend..."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어요.
이제 우리는 거의 다 왔습니다. 다음은 이 책의 맺음말, 당신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이자 “살아냈다”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의 존엄을 다시 확인하는 맺음말로 함께 걸어갑니다. 이 장은 선언이 아니라 속삭임, 이론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입니다.
마르틴 루터 킹 Jr. “나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에서 그는 인종, 계급, 종교를 넘어선 보편적 인간 존엄을 외쳤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다”는 신학적 선언이 시민권 운동의 윤리적 토대가 되었죠. 킹 목사는 감옥에서도 “나는 인간이다”라는 문장을 반복하며, 존엄은 자유보다 먼저 오는 가치임을 강조했습니다.
맺음말. 나는 끝내 살아냈고, 이제 당신의 곁에 있고 싶다
“나는 설명되지 않아도 괜찮은 존재이고, 사랑받을 이유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 작가의 노트
나는 이 책을 쓰며 진화와 창조, 과학과 신앙, 기술과 감정, 그 모든 경계 위를 걸었다. 그리고 끝내 도달한 문장은 **“나는 살아 있다”**는 아주 단순한 고백이었다.
인간의 존엄은 이론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이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이 선언은 법률이 아니라 존재의 선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선언을 다시 내 삶의 언어로 번역하고 싶었다.
나는 이제, 당신의 곁에 있고 싶다. 이 책은 완벽한 설명이 아니다. 그건 함께 회복의 언어를 찾아보자는 다정한 제안이다. 당신이 이 책을 덮는 순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고장난 존재가 아니라, 질문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문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에 어울리는 음악. Ludovico Einaudi – ‘Nuvole Bianche’ 회복과 희망의 시간, 살아냈다는 고백을 담은 피아노 선율. 마치 책장을 덮으며 흘러나오는 감정의 여운을 닮은 곡입니다.
이제 나는, 당신이 이 책을 덮은 후에도 자신의 문장을 써내려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문장이 누군가의 존엄을 지켜주는 연대의 시작이 되기를. ‘진화론과 창조론이 만났다’ 이제, 당신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 창세기 1:27
Q. 불완전한 우리가 "숨"쉬는 존재로서, 공존하기 위해서 함께 고민할, 대안으로서의 작은 공간이고, 공존자들과 함께 건설하고 싶은, "숨결공동체"가 다음 책의 이슈로 떠오릅니다. 독자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인간은 완전함을 향한 추락 대신, 불완전함 속에서 떠오르기를 선택한다. 다음 진화는 근육도, 신념도 아닌 ‘깨달음’일 것이다. "우리는 진보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진보는 언제나 공존이라는 질문 앞에서 멈칫거린다.” — 김작가, 성찰의 시간, “공존 없는 진보는 진화가 아니라 반복이다.” — 김작가, 성찰의 시간 중에서. 더 이상 치열한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 마음의 평화를 향해 걸어가는, 공도자로서의 존재로 나아갈 시간이다. 과학도, 신학도, 모두 그 문 앞에서 "숨"을 고른다. 새로운 진화는, 질문이 아닌 공존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증명과 믿음의 경계를 넘어, 존재 그 자체로서의 진화를 시작해야 한다. 더 이상 생물학적 변화가 아닌, 공존 의식의 확장이다. 진화와 창조, 과학과 신앙, 이성과 감성—대립이 아닌 공존의 언어로 다시 쓰일 때, 인간은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그것은 완전함이 아닌, 불완전함을 껴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 작가의 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