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어느 맑은 날, 스님이 두 개의 찻잔을 꺼냈다. 하나는 푸른 무늬, 하나는 붉은 무늬. 그리고 말했다.
스님: 이름은 다르지만, 차는 같습니다. 오늘은 이름을 이야기해볼까요?
무슬림 학자는 이마를 매만지며 응답한다. 무슬림: 알라는 하나이십니다. 꾸란에서는 유일하다고 했죠. 모든 이름은 인간이 붙인 것입니다.
목사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든다. 목사: 하나님도 역시 하나. 하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너무 많은 이름으로 부르죠. 자비로우신 분, 전능하신 분, 기묘한 분…
신부가 조용히 말한다. 신부: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나는 아버지와 하나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그 아버지를 너무 여러 나라로 나눠버립니다.
철학자가 질문을 던진다. 철학자: 하지만 신이 한 분이라면, 왜 그분은 자신을 그렇게 다르게 설명하게 놔두셨을까요? 혹시 그게 의도라면… 신은 다중 정체성의 존재인가요?
심리학자는 기록을 보며 설명한다. 심리학자: 아이들은 같은 부모에게 서로 다른 이름을 붙입니다—“엄마”, “마미”, “어머니”. 신도 그런 대상일 수 있죠. 다름은 인지적 거리 때문이죠.
유전공학자가 웃는다. 유전공학자: 재미있네요. 동일한 DNA가 표현형을 바꾸는 것처럼, 신도 언어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걸까요?
의사가 말한다. 의사: 환자들이 아픔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 다르다고 해서, 고통의 본질이 달라지진 않거든요. 이름은 마음의 틀입니다.
판사가 한참 듣다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판사: 법적으로는 ‘동일인 여부’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신은 증명될 수 없기에, 이름보다 관계의 진실성을 봐야겠죠.
그때 랍비가 입을 연다. 랍비: 신은 우리를 아십니다. 그분이 서로를 아실 필요는 없겠지요. 우리는 서로를 모르지만, 신은 우리를 하나로 보실 겁니다. 모두가 잠시 침묵한다. 두 개의 찻잔—푸른 무늬와 붉은 무늬—그 안엔 같은 차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알았다. 이름은 서로 다르지만, 향기는 하나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