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한 듯 가벼운 종교 수다

by 김작가a

제8화

“침묵은 말보다 무겁다”

아침 공기가 유난히 맑았다. 찻잔에 김이 서리고, 바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님은 앉은 자리에서 눈을 감고 있다. 모두가 그를 바라본다. 말없이 흐르던 시간이 몇 분. 그 침묵이 대화를 시작했다. 스님: 수행 중에 말은 파도입니다. 침묵은 바닥이지요. 파도는 흔들리지만, 바닥은 진실합니다.

신부가 조용히 응답한다. 신부: 예수님은 종종 침묵하셨습니다. 특별히 가장 어려운 순간엔… 말씀보다 침묵을 선택하셨지요. 그건 슬픔이 아니라 사랑의 방식이었습니다.

목사가 웃으며 말한다. 목사: 설교 중에도 일부러 멈추는 순간이 있어요. 그 짧은 공백은 말씀보다 더 강하게 울립니다. 침묵은 신의 틈입니다.

철학자가 찬찬히 질문한다. 철학자: 말은 의미를 담습니다. 하지만 말이 많을수록 진실은 멀어질 수도 있어요. 침묵은 의미의 잔존입니다. 존재가 언어를 거절할 때, 침묵은 진실이 됩니다.

심리학자는 자료를 펼친다. 심리학자: 언어를 잃은 환자들이 감정을 침묵으로 표현합니다. 눈빛, 숨소리, 몸의 긴장—그 모든 게 말보다 선명할 때가 있어요.

의사가 덧붙인다. 의사: 의학에서도 침묵은 증상이자 신호입니다. 말할 수 없다는 건 말보다 많은 정보일 수 있죠. 슬픔, 외상, 퇴행… 모두 침묵으로 말합니다.

유전공학자는 생각에 잠긴다. 유전공학자: 유전자도 침묵합니다. 발현되지 않는 유전자들은 말을 안 하지만, 존재는 합니다. 침묵은 잠재성과 연결되어 있어요.

무슬림 학자는 차분히 이야기한다. 무슬림: 이슬람에서도 침묵은 경건의 표시입니다. 말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여야 하니까요. 조용한 의도 없이는 말은 공허합니다.

그때 판사가 입을 연다. 판사: 법정에서도 침묵은 증언입니다. 말하지 않음은 때때로 죄보다 무겁고, 때론 무죄보다 더 진실합니다. 말은 조작될 수 있지만, 침묵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침묵이 가장 솔직한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아무도 큰소리를 내지 않았고 누군가는 말 없이 눈물 흘렸고 말보다 무거운 것들이, 찻잔 위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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