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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Sep 03. 2024

변수 발생, 이사를 못 갈 지도 몰라요

나그네방이 궁금하신가요?

대출 신청을 거절당했다. 소득 요건도 충족했고, 대출에 필요한 조건을 모두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문제였을까. 다가구 주택 특성상 대출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독 주택의 경우 공시 지가가 낮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고, 그로 인해서 전세 사기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증금을 보장받기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부동산에서는 이 집에 대해서 충분히 전세 대출이 나올 수 있는 조건에 해당한다고 말해 주었는걸.


엊그제 온라인으로 신청한 대출 심사를 맡은 담당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대출 신청하셨죠? 이 집은 공시 지가가 낮아서, 현재 보증금은 너무 높게 책정되었다고 봐야 해요. 이 가격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내어 주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됩니다. 신청하신 대출 신청은 부적격 판정을 드릴 거예요.' 사무직원의 무미 건조한 팩트 나열이 귓가를 스쳤다. '오.. 잠시만요 직원님, 부동산에서는 대출이 나올 수 있는 조건이라고 했는데요. 정확히 보증금이 얼마나 높게 책정되었다고 보시는 거죠?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묻자, 그는 다가구 주택의 특성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며 통화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만약 제 친구가 이 집을 계약한다고 했다면 저는 위험하다고 말렸을 겁니다. 등기부등본을 먼저 보시지 그랬어요.'


선생님, 그 집은 등기부등본을 보고 계약한 집입니다. 가압류 없고, 근저당 없고, 세금 체납도 단 한 건도 없는 집이라고요. 그런데 공시 지가로 책정된 건물 전체의 가격에 비해 각 세대에 책정된 보증금이 높고, 이를 모두 합쳤을 때, 내 집의 보증금까지 더하면 은행에서 대출을 내어주기에는 불안하다는 이야기잖아요. 임차인 입장에서는 서울 시내에서 이런 집을 이 가격에 구하기 어려우니 대출을 받아서라도 계약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은 집이었는데. 대출을 실행하는 은행 입장은 나와 달랐던 것이다.


그럼 집 계약을 취소하고 다시 발품 파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 갈 생각에 들떴던 마음에 돌연 불안이 찾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끼기긱 거 잘 지냈소? 나 들어가네~ 불안이 들어오시려 하는 문을 막고, 조용히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이건 아주 작은 이슈일 뿐이야.

대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어딘가에 있어.

좌불안석하지 말자. 불안을 키우면 안 돼.

될 일이 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게 나의 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보자."


겨우 한 번 대출을 거절당한 게 아닌가. 다른 은행에 대출을 신청해 볼 수 있고, 처음 신청한 A 대출 상품이 아니라 B라는 다른 대출 상품도 알아볼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동네 근처 은행을 돌아보며 발품을 팔아 보면 어떨까. 먼저 구청에 딸린 은행에 방문했다. "저 버팀목 대출 신청 하러 왔는데요." 창구에 앉은 직원이 나를 보며 말했다. "9월에 구청에서 대출 실행하는 게 있어서요. 저희 지점은 10월까지는 개인 대출을 받지 않아요. 동네 근처에 저희보다 조금 더 큰 지점을 찾아보세요." 대출 상담을 시작도 못해보고 빠꾸를 당했지만, 은행에서 안 된다는 걸 나만 해달라고 사정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상담이라도 받고 가자는 마음으로 창구 직원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선생님, 제가 다가구 주택 계약을 했는데 A 대출 상품은 거절당했거든요. 혹시 B 상품으로 대출받을 수 있는지 상담이라도 가능할까요?" 그러자 직원분은 다가구 주택 특성상 A 대출 상품은 반려당할 가능성이 높다며, 하지만 이 동네 특성상 다가구 주택이 많으니 B 대출을 시도해 보라고 권장했다. "저도 다가구 주택에 B 대출 여러 번 승인해 드렸어요."


'그러면 선생님 제 대출도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하며 빠짐없이 준비해 온 대출 서류 봉투를 창구 너머 선생님의 책상에 가지런히 놓아 드리고 싶었지만, 그녀의 '우리는 안돼'라고 명확하게 말했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아서 입을 열지 못하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방금 전 다녀온 구청에 딸린 은행보다 규모가 3배는 넓은 다음 지점을 찾아갔다. 공간을 쓱 둘러보니 개인 대출 상담사분도 한 분이 아니라 세 분이나 계시니 이곳에서는 대출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대기표를 뽑고 내 차례를 기다렸다가 순서가 되어 드디어 대출 상담 의자에 앉았고, "버팀목 대출 신청하러 왔습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이번에는 "옆에 아파트 대단지 들어오는 거 아시죠? 저희 지점이 지금 아파트 단체 대출을 맡게 되어서 10월까지는 개인 대출 신청을 안 받고 있어요."


선생님들 왜 개인은 봐주지도 않으시는 거예요... 혹시 몰래카메라인가요? 지점마다 개별 사정이 있어서 개인 대출을 꺼리고 있는 상황. 어쩌면 어제 전화로 대출 상담을 해준 직원에게는 고마워해야 하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심사라도 해주었으니까.  


그러면 이제 포기해야 하나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두드리면 열리지 않을까. 이제 겨우 대출 신청 세 번 해보았고, 거절 세 번 당했으니까. 조금 더 시도해 보자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었다. 지하철 개찰구를 지나오면서 스스로에게 아직 낙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위로를 전해본다. <나그네방은 될 일이니까, 될 일을 되게 만드는 게 내 일이니까. 대출 심사를 번번이 거절당해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보자.>


회사로 돌아와 갈색 서류 봉투에서 대출 서류를 모조리 꺼내, C 은행에 대출 신청을 했다. 오늘 신청하면 내일 사전 심사 결과라도 나오겠지. 만약 C 은행에서도 대출이 거절되면, 제발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C 은행의 다른 지점을 찾아가 볼까 아니면 D 은행에 도전해 볼까.


혹자는 '은행에서 대출을 반려한 이유가 있는 건물이라면 다른 집을 알아보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계약한 집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는 점이다. 나는 은근히 금사빠이고, 그 집은 내 주거 요건에 가장 중요한 햇볕이 잘 드는 집이었고, 나와 나그네들이 머물 방까지 안성맞춤의 공간 구성이었다. 이미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잘 지내보고 싶다고 기도도 했는데. 거기다 동네가 여간 마음에 드는 게 아니라서 하루빨리 이사 가서 즐겁게 뛰어놀고 싶다. 대출아 제발 나와주세요.


다음 이야기에서 나는 조금 더 낙심한 마음을 나누게 될까 혹은 대출 승인의 기쁨을 나누게 될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대출 승인의 기쁨을 나누고, 이후에는 이사 준비와 나그네들의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한 일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한 일이 꼬이는 경우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 이때, 내 예상과 다른 현실 앞에서 요동하거나 평정심을 잃지 않으면서 꼬인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나는 아직 괜찮다. 나그네방을 위해서라면 몇 번 더 거절당해도 몇 번 더 도전해 볼 마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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