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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너구리 Feb 24. 2021

그 누구의 잘 못도 아니야

최선을 다한 모두들에게

정말 이 병원은 규모대비 엄청난 양의 수술을 하는 것 같다.


어제는 양으로 말고 질로 내 당직 인생 최고의 다채로운 응수의 향연이었는데- 나와 얼마 나이 차이가 나지않았던, 과거력 하나 없던 그녀는 한명의 생명을 출산했다는 이유로 사경을 헤맸다. 자고 싶다고 내심 투덜투덜거리면서 수술방에 들어갔을 때, 그 아수라장 같은 수술방에서 나는 잠을 깨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움직여야 했다. 예를 들면 챠팅이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랄까.. 정말 정신없던 몇시간 동안 교수님 펠로우선생님 치프까지 모두 들어오셔서 심장 에코를 보고 6개의 라인에 약과 수액 피를 로딩하면서 혈압이 50이던 postpartum bleeding 환자를 120까지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새벽에 obgy교수님까지 오셔서 모든 혈관을 잡아냈다.

 백지장처럼 하얗던 그녀를 무리해서 깨우지 말자고 파트와 협의했고 그녀는 중환자실로 가게되었다. 환자분이 나간 후 잠깐 쉬고 다시 응급수술로 가는 길에 (깊은 한숨) 면담실에서 보호자와 마주한 산부인과 교수님의 표정을 우연히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교수님께는 익숙한, 직업적인 표정일지 몰라도, 내가 느끼기론 너무나 슬픈 표정이었다. 이 새벽의 모든 일들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였다. 의료진은 정말 최선을 다하여 살려냈지만 교수님의 표정은, 아기를 낳고 중환자실에 들어간 자식의 소식을 듣고 절망하는 친정엄마의 상실감에 깊이 물들은 듯했다.
염증이 심해 2~3시간 폭풍 이리게이션까지 하고 끝내야만 하는 압뻬 퍼포(터진 충수돌기)나, '내가 바로 충수돌기요'라고 솟아있는 마치 캬라멜땅콩콘같은 맹장을 톡 잘라내는 심플한 압뻬(안 터진 충수돌기)가 같은 가격을 받는다는 것도 정말 웃기지만, 산부인과 수술은 특히 정말로 drg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 다 목숨걸고 하는 일이다 산모도 의료진도. 값어치를 매겨서는 안되는 값진 일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수고에 대한, 적어도 수술의 가치만큼의 최소는 챙겨줘야하는 것 아닐까.


(산부인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바이탈 과들이 주 80시간은 갖다버리고, 모든 전공의들의 맥시멈을 갈아넣고 넣어 굴러가고 있다. 최소를 창출하려 최대를 희생시키는 이런 와중에도 오늘 하루만 8시간 짜리 debulking수술이 몇개다. 하나에 150만원 짜리라는 그 수술이.


가끔은 너무 답답한 이 곳에서도 하늘은 언제나 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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