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들의 파티에 초대합니다 '오픈 하우스 페스티벌'
유토피아를 꿈꾼 1930년대 모더니즘 주거공간
오픈 하우스 페스티벌에서 두 번째로 광클해서 갔다온 곳은 하이게이트(Highgate)에 위치한 하이포인트 플랏이다. 이소콘 플라츠와 영국 모더니즘 건축의 흐름과 나란히 하며, 주거공간의 혁신적인 설계로 유명하다. 1935년부터 1938년 사이에 건축가 베르톨트 루베트킨(Berthold Lubetkin)이 설계했다. 루베트킨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아 공간 안에서 먹고 자고 쉬고 즐기는 모든 것이 갖춰진 아파트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거주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용 정원, 옥상 테라스, 따뜻한 수영장, 테니스 코트, 주차 공간 등 당시로서는 다양한 어메니티 시설을 갖춘 최고급 주택이었다. 헬스장, 수영장, 놀이터, 지하주차장 등 요즘 신도시에서 지어지는 아파트 단지가 무려 100년 전에 지어졌다고 생각해보면 정말 혁신적인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당시 르 코르뷔지에가 이 건물을 보고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극찬한 공간이기에 한껏 기대에 부풀어 간 곳이었다.
저는 오랫동안 인류를 위해 그러한 조건에서 주택을 건설하는 것을 꿈꿔왔습니다. 하이게이트의 건물은 최고의 업적입니다.
For a long time I have dreamed of executing dwellings in such conditions for the good of humanity. The building at Highgate is an achievement of the first rank.
-Le Corbusier (1935) -
하이포인트 I & II
하이포인트는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있는데, 다른 시기에 지어졌을 뿐 전체적인 설계는 모두 루베트킨의 모더니즘 건축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다만 하이포인트 II가 먼저 지어진 하이포인트 I 보다 더 하이엔드 스타일로 지어졌다. 펜트하우스가 위치한 하이포인트 II 로비는 붉은 색으로, 하이포인트 I은 파란 색으로 대조를 이룬다.
로비의 공간감이 주는 느낌도 굉장히 다른데, 하이포인트 I 은 안쪽으로 들어가면 곡선으로 이어진 벽면과 쨍한 파랑색이 만나서 목욕탕 혹은 수영장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이 나타난다. 유리블럭 역시 물과 관련된 공간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해보인다. 루베트킨이 러시아 출신 건축가라 그런지 뭔가 아기자기하고 다정한 느낌을 좋아하는 영국인 취향은 아닌 것 같았다. 단순한 평면에 무심한 원형 기둥들, 인테리어에는 고민하기 귀찮았던 듯한 정사각형 타일로 싹 둘러버린 마감재 등등, 자고로 로비에 들어서면 '웰커밍'하는 기분이 들어야하는데 감정을 배제한 정말 기능에만 충실한 듯한 공간이었다. 사실 기능에 비해 지나치게 휑한 복도 공간은 내 취향도 아니었다.
그와 반대로 하이포인트 II는 건축가 본인이 직접 살 공간이라 그랬는지 더 오밀조밀하고 짜임새있는 평면이었고, 마감재와 조명 역시 좀 더 신중하게 고른 느낌이었다. 심어져있는 식물도 약간 더 신경쓴 느낌이랄까...
펜트하우스
이 투어 역시 사람이 직접 살고있는 두 가지 평면 타입의 공간과 루베트킨이 본인이 직접 살기 위해 설계한 펜트하우스에 가볼 수 있었다. 힐게이트의 높은 위치 때문에 런던에서 가장 높은 집이어서 테라스에서 런던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무척 좋았다. 가로로 긴 창문과 무려 12미터가 되는 곡선 천장은 웅장한 공간감을 주면서 동시에 투박한 원목 마감 덕분에 아늑하게 느껴졌다. 그와 반대로 침실과 욕실은 하이포인트 I의 쿨한 모던함을 보여주는 느낌의 인테리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