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적금 낭비하기
카메라를 샀다. 소위 '콘텐츠의 시대'라는 흐름에 올라타 보고 싶기도 했고, 훗날 내 삶의 궤적이 될 이야기들을 영상이라는 일기로 남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마음속 멘토로 삼고 있는 영상 전공자분의 행보가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 사실 돈 벌 궁리부터 해야 할 시기인데, 나는 자꾸만 돈 안 되는 흥미로운 일들에 마음을 뺏긴다. 게임이나 술, 가벼운 만남을 즐기는 또래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가끔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지가 다른 것이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근에는 관계에 대해서도 변화가 생겼다. 연락을 망설이던 옛 친구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용기가 생겼다. 내 삶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어난 구체적인 변화다. 인생도 사업과 구조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무모할 정도로 몰입하다가, 때가 되면 가지를 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군 시절 훈련소에서 『도덕경』을 탐독하고 자대에서 필사하며 얻은 자연의 순환에 대한 지혜가, 이제야 내 삶의 시스템을 대비하고 시도하는 밑거름이 되어주고 있다.
8월 전역 후 4개월, 한 달간의 여행을 포함해 오직 나 자신에 대해 깊이 고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경제적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죄책감이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생각을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붙들어 맬 수 있었다. 한때 크고 버겁게만 느껴졌던 '습관'이라는 녀석도 이제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요령이 생겼다.
사회초년생치고는 꽤 과감한 200만 원의 투자. 누군가는 밴드 음악이 좋아서 샀다가 방치된 기타처럼 될까 우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기록'이라는 명확한 카테고리가 있고, 나에겐 이미 이를 요리할 편집 기술이 있다.
이제 나의 하루는 시간의 레버리지를 실천하는 장이 될 것이다. 매일 두 시간씩 새로운 것을 배우되,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으며 미감(美感)을 축적해 나갈 계획이다. 예전처럼 좋은 것을 보고 감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단 하나라도 제대로 붙잡아 내 감각을 문자화하려 한다.
요즘은 서머싯 몸의 『면도날』에 푹 빠져 있다. 도서관에서 한 달을 기다려도 구할 수 없어 서점에서 마지막 남은 한 권을 손에 넣었을 때의 쾌감이란! 매일 읽고 쓰는 행위가 반복되다 보면 내 문장도 조금은 단단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글 근육이 붙으면, 한 달 전부터 구상해온 '비둘기'에 관한 소설도 꼭 써보고 싶다.
삶은 참으로 재미있는 것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