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포병은 견인포병이지

by mica

나의 본격적인 첫 글쓰기는 군대에서였다. 본격적인 독서 취미도 군대에서 시작되었다.


올해를 돌아보면 군대에서는 상병부터 병장, 그리고 전역까지의 여정이 있었고, 사회에 나와서부터는 8월부터 지금까지 4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1.jpg 견인포 이미지 출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korddong127/120205392331


나는 예전 구닥다리 대포를 운용하는 보직을 맡고 있었다. 이 글을 보시는 남성분들이라면 아실지도 모르겠다. 3사단(백골)의 견인포병이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이 바로 155mm 견인포다. 지금의 자주포는 포를 쏠 때 밀려나지 않도록 스스로 고정되지만, 견인포는 그 과정을 사람이 직접 몸으로 빠르게 해내야 한다. 해보기 전까지는 쉬워 보일지 모르겠다. 나 역시 꾸준히 헬스를 해왔고, 입대 전 1년간 매일 크로스핏을 했던 사람인데도 혀를 내둘렀다. 양쪽 다리 무게만 해도 한쪽당 2톤이었던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포 자체의 무게가 어마어마했다. 설상가상으로 군대에 사람이 점점 줄어들어, 전역할 때쯤엔 입대 당시 인원의 절반밖에 남지 않아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제8군단_해상장사거리_사격.jpg


하지만 포탄 사격만큼은 정말 재미있었다. 이건 군인이 아닌 일반인이 와서 보더라도 흥미로워할 광경일 것이다. 견인포병 생활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이때다.


매일같이 실제 사격은 하지도 않으면서 훈련만 무한 반복하던 그 고통의 시간들…. 그러다 마침내 실사격 날, 시원하게 방열(포를 땅에 고정하는 과정)을 딱 한 번만 마치고 멋지게 트리거를 당겨 목표물에 거대한 포탄을 실제로 날려 보내는 그 경험! 여러 대의 포가 일제히 사격 명령에 맞춰 보고하고 동시에 불을 뿜는 광경,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거대한 포성, 그리고 사격 후 뒤를 돌아보았을 때 편하게 앉아 그 모습을 감상하고 있던 통신병들을 보며 느꼈던 묘한 부러움까지. 그날의 장면 하나하나가 여전히 기억 속에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지금 돌아보면 그 많은 훈련들을 어떻게 해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부대 자체는 좋았다. 기본적으로 일이 협동심 중심인 데다 다치기 쉽고 무엇보다 힘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할 거 없으면 훈련만 할 정도로 훈련이 잦았기에 구타도 구박도 없었다. 오히려 안으로 똘똘 뭉치는 분위기라 따뜻했다. 최신식으로 지어진 식당과 최고로 맛있는 밥은 살찌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덕분에 인생 최고 몸무게를 갱신했다. 작년 겨울의 나는, 겨울 동물이 살을 찌우고 털을 부풀리듯 몸을 부풀렸다. 겨울의 철원은 추위에 약한 나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금 와서 좋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1년 반 동안 사회초년생의 감각으로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느껴본 것, 시간에 따른 계급과 월급의 변화, 그리고 계급이 주는 무게의 변화를 경험한 것은 소중했다. 집단 내에서의 내 위치가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변화하는 과정을 단 1년 반 만에 배우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낯선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1년 반 동안 함께한 기억들, 한 집단에 소속되어 그 속의 작은 집단을 책임지고 이끄는 리더가 되어본 경험들. 고참으로서 내가 배웠던 지식을 경험을 통해 개선하여 신병들을 가르치고 다독여주었던 일들…. 워낙 거친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심하게 다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다치는 것을 보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이었다. 많아 봤자 1년 차이지만 말이다.


나는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늘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후임들을 지나가다 보더라도 늘 웃는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던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일기장을 보고 방금 깨달았다. 지금은 무의식적으로 웃지만, 이게 자연스럽게 나오기까지 1년이나 걸린 셈이다. 와, 나 정말 대단한데?

그 덕분인지 군대에서도 누군가와 마찰 없이 잘 지내왔다.


재미있는 사람이 되는 건 여전히 힘들지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주변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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