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르르..

by mica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인식될지, 그건 선택의 영역이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고 알맹이가 없는 사람이라 속보다 겉을 더 신경 쓰려고 했었다. 다만 겉모습을 가꾸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무언가를 표출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글보다는 그림이나 디자인, 시각적 요소에 가까운... 어, 겉은 시각적인 영역이니까 당연히 그렇겠구나. 그렇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5가지 감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는 시간 동안 최대한 감각을 쌓기 위해 다양한 공간을 돌아다니고 의미 짓기를 연습하다 알게 되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오감을 다양하게 이용해서 예술가들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특히 내가 몸담고 있는 공간의 영역에서는 모든 경험을 고려해야 하겠더라. 그 무게감이 실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인간이라는 존재가 서로를 인식하는 영역에서는 각자 자신의 예술을 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살아있는 유기체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자신을 표출하는 과정이랄까? 따뜻한 목소리에서 오는 안정감, 살결의 부드러움, 그 위에 걸쳐진 코트와 손이 마찰하며 털들이 일으키는 따끔한 감각, 우디 머스크 계열 향수의 포근한 잔향, 시골 문학 소년처럼 한없이 무겁게 차려입은 옷의 외형, 영하 12도의 온도에서 느껴지는 시원하고 차가운 공기의 맛. 그리고 그 모든 분위기를 관장하고 통제하는 사람의 마음이 그 사람을 정의하고, '의미'라는 짧은 언어의 에센스를 추출해낸다.


사람은 그래서 예술이고,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쏟아야 하기에 흥미롭다. '의미(意味)'라는 단어에서 '미'는 '맛 미(味)'를 뜻한다고 한다. 나는 그래서 사람의 이미지라는 건 '음식'이다라고 자주 정의한다.


이미지란 어떨 때 완성되느냐 하면, 늘 같은 이미지를 모두에게 제공할 수 있을 때가 일단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전문 음식점이라면 일정한 퀄리티의 음식을 모든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거기서부터가 음식점에서 나오는 음식을 '음식'이라고 논할 수 있는 시작점인 것 같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패스트푸드 같은 대중적인 일반 음식점이냐, 파인 다이닝이냐로 나뉜다. 대중적인 음식점은 먼저 개수가 파인 다이닝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비슷한 음식점이 전국에 꽤 있고 가격적인 메리트가 있다. 파인 다이닝은 수가 적은 만큼 각각이 강한 개성을 띈다. 더 전문화된 기술을 사용해 더 좋은 식자재로 음식을 만들지만, 그만큼 한 번의 식사 비용이 일반 음식점에 비해 비싸다. 물론 평균적인 음식의 맛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일반 음식점은 대중적인 입맛을 사로잡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다. 정말 맛이 없고 파인 다이닝과 사람들이 비교하며 먹었다면 그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대중적인 가격은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하고 일정한 감정을 전하기에 적합하다.


파인 다이닝은 돈이 안 된다고 한다. 대기업 자본의 도움이 없으면 날개를 펼치기 쉽지 않다. 정말 좋은 음식을, 더 다양하고 새로운 나의 음식을 제공하고자 하는 셰프님들의 몰입과 열정이 없으면 시도하기 쉽지 않은 분야다. 그런 진심인 사람들이 달려든 분야라 그 점이 빛나고 아름답다. 그런 '무위'의 개념이 삶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말하는 여유와 개성이 나타난다고 나는 느꼈다. 또 바뀔 수도 있겠지만 분명 저번 주의 나는 그렇게 느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지하철에서 생각하고 낙서장을 꺼내서 열심히 머릿속에 든 것을 담아두었었는데, 온전하게 담아냈는지는 모르겠다. 왜 썼을까?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었나? 또 열등감인가? 내가 특별해지고 싶다고, 특별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 그냥 매일 쓰는 글에 낙서장을 보며 어제 내가 무슨 생각을 많이 했나 살펴보고, 다시 한번 생각하며 써 내려가는 글일 뿐이다.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매일 쓰는 것뿐이다. 그렇게 잘해보겠다는데 매번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럼에도 내 무의식은 늘 스스로를 의심하는 방향으로 결국 흐른다. 경사진 사고를 하고 있다.


대중적인 이미지와 유니크한 이미지의 차이는 그 깊이다. 쇼츠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접근하기 쉬운 표면층까지 들어갔다가 나오는, 흔히 '찍먹'한다고 하는 행위를 좋아한다. 나도 자주 빠진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그러나 나는 좀 낭만 혹은 꿈이 있다. 다양하게 경험을 쌓고 무위의 영역에 발을 걸쳐, 정말로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정말 좋아하는 행복한 것들을 많이 만드는 사람. 나는 멋진 할아버지가 되어 AI 시대에도 유효한 조언을 젊은 사람들에게 해주는 어두운 밤의 손전등이 되어, 다음 세대가 더 나아가 선택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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