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14
어제 내린 눈이 바닥에 남아 하얀 바닥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하루네요.
다들 하루는 잘 마무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늘 똑같답니다.
한 가지 말하자면 오늘 여느 때처럼 동생과 어머니는 학업 문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저는 언제나처럼 운동을 다녀와 도서관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답니다.
여느 날처럼 밖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음속에 같은 성질을 띄고 있는 두 사람 어머니와 동생입니다.
방학이 되어서인지 붙어있는 시간이 길어 자주 보이는 광경입니다.
동생은 어머니를 닮은 기질을 지닌 터라 서로의 말만 하고 서로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럴 때면 제가 나와서 중재를 하려고 나옵니다.
그럴 때면 서로의 말을 서로가 들을 수 있게 번역하는 번역기가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닫게 하려고 무언가 하려고 해도 기질을 바꾸기에 제 언변으로는 부족한 것을 많이 느낍니다. 시간으로 해결이 될 문제라 느끼기에 번역기의 일만 건조하게 하려는 마음을 다잡은 날입니다.
그날은 그냥 무언가에 대해 계속 적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느 날 오전 익숙한 하루가 비틀어지며 하루가 시작되는 고통을 맛보았다.
나는 고전을 좋아한다. 그중에도 현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간 이야기를 좋아한다.
고전에는 누군가의 역사가 들어있다.
당장의 현실보다는 더 넓은 세상과 많은 가능성을 보고 싶다.
근본을 쫒는 건가?
그게 무엇인지 계속 생각해 왔다.
책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얻을 수 없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
그로 인해 현실이 흐릿해지고 놓치는 부분이 많지만 말이다.
안국역 인근 딸기로 가득 찬 케이크를 내는 작은 카페가 있다.
그 앞 몇몇 사람들이 연달아 웨이팅을 해야 한다며 다른 카페를 찾고 계셨다.
운 좋게도 내가 들어간 순간 한 테이블이 비었다.
그날은 너무나 불운한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떻게든 내 마음은 그 행복을 크게 받아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더라. 카페에 가기 전 10시에 경복궁과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했다. 뭔가 국립현대 미술관에 고갱의 작품이 있었던 것 같다는 기억이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달과 6펜스'를 즐겁게 읽은 나로서는 방문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다. 뭐 그러나 그 스쳤던 기억은 프랑스의 오랑주리미술관에서의 기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했다.
경복궁에 가보니 외국인들이 많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3개월 전 3주간의 유럽 생활이 그리워졌다. 영어권에서 오신 외국인들이 길이라도 물어보셨다면 그게 어디든 내 외로운 여행을 미루고 안내해드리고 싶던 심정이었다.
복학신청을 해야 하는 시기였다. 나는 복학신청에 필요한 어떤 지식도 갖고 있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이래놓고는 달력에 중요 표시를 친 채 한 달 전부터 스케줄러 달력에 작성에 두었지만 말이다. 이때부터 오늘의 나는 꽤나 역설적이었다.) 사실 복학 신청 날짜를 잊어버렸다는 핑계로 1년간 알바나 하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싶었다. J성향인 나의 본질을 왜곡하고 나를 부정하고 싶었나? 과거의 세상에서는 지금의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만큼 나는 많이 변했다. 전에는 성공이라면 물질적이거나 명예 이런 부류였지만 그 폭이 꽤나 넓혀진 게 이런 나의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동에서 느껴진다.
글 중 언급했던 카페에 나는 여전히 앉아있다. 한 조각에 11000원이다. 다른 케이크조각은 8000원인 것에 비하면 가격이 있던 편이었다. 딸기 가격이 비싼 건지 딸기가 많이 들어가서 비싼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무의식에 스트레스가 쌓여있었는지 충동적으로 시켜보았다. 온전하던 딸기 케이크가 단면을 드러내자 놀랐다. 케이크 속이 딸기 과육으로 가득가득한 케이크였다. 한입 넣으니 입에 딸기와 나머지 부분이 2:1 딸기 참 오랜만인데 기쁘게 먹었다. 허겁지겁 케이크는 빠르게 사라졌다.
일을 하지도 않는데도 군생활에서도 올라오지 않는 포진이라는 게 입술에 올라온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병이지만 타인의 의견에 포진이라더라 따갑고 불편하다. 스스로 지친다 느끼면 나는 그 인식 자체가 자기 위로이며 착각이라고 늘 느끼고 스스로의 정신머리를 경멸했다. 이번 기회에 내가 느낌 정신적 체력소모가 현실임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정신적인 부분에서 이 정도로 힘들어본 경험은 없어 판단이 불가하다. 과거의 나는 늘 단순하고 순종적이되 나름의 거짓을 즐기며 살아왔다. 사람의 입체적이며 불의의 관점으로 구분이 불가하며 그로 인해 예측 불가하게 변화함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뭐 지금의 나는 내게 참 엄격하다. 헬스도 늘 5시 전에 늘 같은 운동루틴을 수행하며 러닝도 늘 넷플릭스에서 같은 영화의 같은 부분만 틀어놓고 뛴다.(단거리 계주에 관한 애니메이션 영화인데 러닝 할 때 늘 자극받는다.) 자기 전 남은 시간에 메일 글을 브런치에 마무리한다. 일기장을 쓰고 다음날에 할 일을 정리하고 지루한 책 한 권을 꺼내 읽다가 잠에 든다.
눈 바로 앞에 아름다운 케이크가 있음에도 복학에 관한 나의 생각을 흘려보내기에 단어 속에 들어있는 알맹이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내가 갈 일반적인 길의 가장 중요한 통로여서일까? 나는 지금 낭만주의자다. 그 밝은 달에 빠져 발밑 동전을 보지 못한다. 현실을 배제하듯 몽상하기에 스스로도 자신의 생각에 함정이 기다리고 있음을 의심한다. 뭐 그게 함정이어도 젊을 때 경험하는 게 낮다는 애매하게 판단하다 두 세상 다 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고민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런 고민이 뭐가 중요하지? 그
저 내 목표만 알면 모든 게 해결될 일이다.
옆 테이블 건축회사를 다니는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분 두 분이 자제 가격과 그것을 정하는 갑과 을의 관계에 불평을 토로하고 계셨다. 글쓴이 또한 비슷한 계열의 전공을 지내고 있기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대화는 긴 침묵과 약간의 굵은 감정적 대화가 반복되었다. 이미 나이가 꽤 있으신 한분과 그보다 더 선배이신 분 간의 대화였다. 한분은 일의 힘듦을 삶의 지루함을 꿈의 상실을 이야기했고 한분은 꿈이란 것의 얼마나 빛나는지 삶이란 얼마나 가치 있는지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을 후배에게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을 본인들이 말하는 한 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쉽없이 그리드형 미도리 노트에 멈춤 없이 쏟아내고 있었기에 그게 신기해 보였는지 생각했는지 침묵 간 심심하셨는지 시선을 던지신다. 사실 던지고 계신다. 지금 말이다.
그와 관계없이 나는 그 대화에서 무언가 느끼고 다른 미도리 노트를 꺼냈다.
붉은 띠를 지닌 미도리 노트 그건 나의 핵심 생각 정리 노트다.
내 목표는 '알 수 없는 무언가'이다.
분명히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것은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 즉 어떤 예술가가 가진 강한 마음의 이끌림이나 무언가, 책의 표현을 인용해서 설명하고 싶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당장의 결론에 퍽 만족스럽고 이제야 짐을 털고 나아갈 수 있을 용기가 생긴다.
그 무언가란 나는 종교 중 '브라만'의 개념을 응용하고 싶다. 그러면서 그것은 언제나 내 세상의 정답이다. 나는 그것을 부르는 목소리가 계속 울리기에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시작은 고3의 졸업식, 그것은 몸집을 키워가다 결국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되었다. 공생할 방법을 찾지 않아서는 안된다. 억누르려고 어릴 적 중독되었던 게임도 깔아 미친 듯이 시간을 죽이며 회피도 해보았다. 그러며 얻은 것은 자기혐오와 파괴본능이다. 결국은 공생해야 하고 쫒아야 한다.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나는 미래의 나를 알 수 없다.
현제의 나는 과거를 바꾸고 미래의 나는 현재를 바꾼다.
미래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과거는 바꾸는 것이다.
뭐 그게 틀렸다면 나중에 이 글을 보며 스스로 부끄러워하겠지
다만 후회는 안 할 것이다.
이미 후회할 게 너무나 많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