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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우리는 슬픔이란 말로 슬픔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슬픔이라는 말은 슬픔 자체가 아닌 까닭이다. [배설물]이라는 단어에서 냄새가 나진 않는다. 기호(언어)란 약속인바, 언어(기호)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 언어가 지칭하는 대상이 (망상 없이) ‘현현’하지는 않는다.
언어의 기능은 표현의 사실적 성공 여부를 따지지 않고, 그 표현을 약속한 참조이기만 하다. 우리는 [‘책상’이라는 단어에 책을 올려놓을 수 없다]. 우리가 ‘책상’이라고 말하는 순간 책상이 눈앞에 현현하지도 않는다. 영어로 된 ‘chair’와 한국어 ‘의자’ 둘 중 뭐가 실제 의자에 가까운가? 라는 의문은 그냥 언어의 기능과 언어가 그 기능으로 표현하려는 대상에의 <혼동>에 불과하다. 우리는 ‘의자’라는 단어로 특정 사물을 지칭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예의 단어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것이지, 언어가 대상을 구현하기 때문에 소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고로, 감정을 지칭하는 단어는 감정을 지시할 뿐 구현하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의자’라는 단어에 앉을 수 없다]. 언어는 본래 그 무엇도 [다] 표현할 수 없다. ‘회복’이라는 단어를 아무리 지껄여도 회복되지 않는다. ‘사적 언어’라는 단어를 제아무리 지껄여봐야 타인과의 약속이 아닌 언어는 이미 언어가 아니다. 주관성이 객관성과 분리된다고 아무리 지껄여봐야 [타인]에게 [주관성]을 언급하는 자체가 그 목적지에 [타인]이 있기에 이미 [객관성]이다. 예의 주관성이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되려면 우선 주관성이 성립해야 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누구의 동의도 없으며 누구도 인용하지 않는 한에서 아무 관객도 없이 혼자서만 <아무도 모르게> 상상하곤 이를 끝내야 예의 주관성이 성립한다].
그처럼 객관성과 분리된 주관성이 그저 문법상의 개념이 아니라 그 실체가 있다손 친다면, 객관성이 타인을 담보로 하는 개념이고 주관성이 오직 자신[만]을 담보로 하는 개념인 까닭에, 주관적 상상으로 당사자가 무슨 배설을 하든 타인이 알 수 없어야 하지 않겠나. 타인에게 한 톨의 영향을 끼치는 순간, 그러니까 주관의 배설물들을 누군가 한 치라도 보고 듣고 맡을 수 있는 순간, 그 배설물들은 [객관적] 배설물이 되는 것이다. 소위 주관의 배출물이라는 [사적] 언어도 마찬가지다. 둘 이상이 소통할 적 약속의 개념으로 소위 [언어]가 등장한 것인바, [사적 언어]가 어떤 [타인]에게든 한 톨이라도 발설되는 순간 그것은 [공적 언어]가 되는 것이다. [사적 언어]라는 말 자체도 타인에 의거해서 성립될 필요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하기만 해야 될 텐데,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오거나 펜으로 표현되는 순간 그 어떤 언어도 사적 언어가 아닌 [공적 언어]인 것이다. 예의 사적 언어가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고 자유롭게 (홀로) 발설되려면, 우선 사적 언어가 성립해야 한다. [아무에게도 발설되지 않고 누구의 동의도 없으며 누구도 인용하지 않는 한에서 아무 관객도 없이 혼자서만 <아무도 모르게> 상상하곤 이를 끝내야 예의 사적 언어가 성립한다].
누군가에게 주장하는 등 말하거나 글로 적는 순간 그것은 이미 [객관적]인 [공적 언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객관적이라면 굳이 [주관]과 [객관]을 구분할 필요가 없어지겠으므로, 주관과 객관의 구분은 그저 문법적인 구분에 그치는 것이다. 따라서 주관성의 신화는 그저 모종의 감상적인 주장을 위해서만 작위적으로 가정되곤 한다(우리끼리 얘긴데).
어떤 철학자는 (언어를 다루는 자신의 무능을 해결한다는 명목이었겠으나) 거의 모든 단어를 새로 만들어서 전개를 이어가기도 했더랬다. 언어와 그 언어가 지칭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해, 있는 단어를 사적으로 사유화하고자 해서는 <개념을 발명하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괴랄한 단어로 같은 것을 지시하는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의자’라는 단어로는 ‘진정한 의자’를 표현할 수 없으니, 앞으로 ‘의좌’라는 단어로 이를 지시하겠다고. 마치 그의 내면에선, <‘의자’라는 단어엔 그 표현 불가능성으로 인해 앉을 수 없으나 ‘의좌’라는 (주관적 상상으로 만들어낸 사적) 단어엔 앉을 수 있다>는 식이다.
어느 유명 인사 또한, 일단 유명해지면 큰길 중앙에 [큰] 볼일을 보더라도 박수를 받는다 하지 않았던가. 예의 철학자는 얼마간 [박수]를 받았을 양이다. 그러나 얼마의 관심을 호소하여 어떤 박수를 받는지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하등 상관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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