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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잭션transaction

by 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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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사 거래, 매매 (=deal)
2. 명사 처리 (과정)

옥스퍼드 영한사전 / trans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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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잭션(transaction)은 하나의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베이스의 연산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데이터베이스에서 논리적인 작업의 단위가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 데이터베이스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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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단위를 통일하는 건, 그 자체로 명확한 약속을 기반으로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우리는 삶의 무수한 문제를 답습한다. 가령, 한 가지 문제의 해결은 그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여타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레퍼런스로 기능할 수 있다. 삶 위에서 해결한 문제들의 개인적인 역사는, 삶이 이미 그 자체로 연속체라는 의미에서, 새로이 만날 여러 문제의 단서로 작동할 수도 있을 모양이다.

무수한 해결은 무수히 새로운 문제에 대한 단서로 기능하며, 간혹은 새로운 문제 자체를 도발하며 구성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사고하는지 자체를 또한 구성하고 있지 않나.

예컨대, 행위를 그 단위로 특정 사건을 바라볼 것인가? 감정을 단위로 누군가를 살필 것인가? 의도를 단위로 가능성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인가? 말하자면, 과연 무엇을 살필는지부터 이를 왜 살필는지까지 생각하는 와중에 은연중에라도 이미 고려하고 있는 건 ‘어떻게’ 살필지 아니겠나. 그러니까 무엇을 단위로 관찰 과정을 전개할지 혹은 관찰 결과를 역추론할지 등의 정신적 행동을 우리는 사건을 마주한 접촉 시점부터 벌써 출발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맥락에서 관계는 단위라는 프리즘을 통해 무수히 많은 주체와 대상을 생산한다. 그러나 주체와 대상 자체는 관계 양상 중 하나라는 [임시적] 축의 양 끝단일 뿐이다. 주체와 대상이 전치될지언정, 관계 자체는 하나의 양상으로 관찰되고 해석되며 대비되고 대응된다. 추리는, 주체로부터 시작되지 않듯 대상으로부터 출발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로부터 ‘단위’를 매개 삼아 이 양 끝단이 역추론될 뿐이다. 여기서도 문제적 단위는 ‘주체’나 ‘대상’으로서 자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주 단순하고도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주체’를 축으로 주관적이라 불리우는 관점을 구성할 수도 있고, ‘대상’을 축으로 객관적이라 불리우는 관점을 구성할 수도 있으리라.

그리하여 ‘누가’ 그것을 의도했는지와 의도된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등의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무수한 평행우주가 계속하여 펼쳐진다 믿어지기도 한다. ‘그의 의도’와 ‘의도된 결과물’이 어떤 접점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이 ‘가능성’은 실로 언젠가 유효하기도 하고 무효하기도 할 양이니까. 주체와 대상은 이 ‘가능성’으로부터 상호 피드백을 받던 어느 날, 그리 성립된 거래를 축으로 그 유효성의 여부를 상호적으로 판결한다.

그러므로 가능성은 그 자체로 삽시간에 휘발하는 증인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여기서 개성을 드러내는 사후적 매개물은 유효성을 피드백하는 단위다. 거래는 주체와 대상을 가로지르며 성립된다. 중지될 수 없는 최소한의 단위 거래는 유효성을 기준으로 판단될 수 있다.

이를테면 사물의 이동을 [지속]이 아닌 [순간]이라는 허황한 관점으로 살피자면, 출발점에 죽음을 남기고 도달점에 탄생을 남기는바. 이동한 사물은 이동하기 전 그것이 [무려] 전혀 아니므로, 우리가 금전을 계좌에서 계좌로 송금할 때, 데이터는 하나의 계좌에서 제거되고 나머지 하나의 계좌에서 생산된다 여겨진다. 한편 이동이라는 [개념]의 작동(운동) 양상을 살피자면, 여기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의 작업은 ‘삭제’와 ‘등록’을 하나의 [지속] 단위 삼아 운동(작동)한다. 만일, 이동(네트워크)에서의 문제가 작업을 [순간] 중지시킨다면, ‘삭제’와 ‘등록’의 동시성이 분할되어 ‘삭제는 실패하고 등록에는 성공’하거나 ‘등록에는 성공하고 삭제에는 실패’하는 ‘경우의 수’가 탄생할 수도 있으리라.


‘삭제’와 ‘등록’을 하나의 단위로 구성하는 단위 [지속]의 ‘거래’가 등장해야 하는 까닭은 저와 같다. 거래는 그 자체로 실패하거나 성공해야지, 반만 성공한다면 우리의 단위는 위의 거래보다 더 미시적이어야 하며, 그리 우리의 사고는 더욱 미시적인 단위를 아울러 상상하며 피할 수 있던 더 많은 오류 사항(실패)을 ‘굳이’ 무릅쓰며 전개되어야 할 터다. 물론 그렇더라도, 특정 사고 단위 내에서 절반의 성공 혹은 실패가 재차 개념을 참칭하며 등장하는 [순간], 사고 단위의 추론은 깨어져 실패하겠지만, 우리는 가장 미시적인 곳에서부터 다시 개념을 구획하며 [지속]적인 추론을 시도할 수 있긴 할 텐데(그리고 여태 그 결론으로서 [실패의 [순간]]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패턴들이 등장해 왔고). 그럼에도 종종 우리는, 정수 간의 덧셈을 추론할 때조차 그 수가 정수가 맞는지부터 다시 논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고정 관념은 전략의 일종이다. 하나의 단위 개념은 주체와 대상 간 거래의 실패 위에서 회고적으로만 구성된다. 어떻게 실패해야 [비교적] [유효한] 실패일 것인가? 주체의 실패가 곧장 대상의 실패가 되어야, 그처럼 묶인 단위라면 실패나 성공 중 단일하게 선택하고 있어야 사후적으로 이러한 사건을 수습할 때조차 관계의 단위를 추리해 낼 수 있다. 그러니까, 삭제와 등록 중 하나의 실패로서의 송금 실패는 삭제와 등록 중 성공한 나머지 하나의 작동 취소와 연관되어야 개념적 유효성의 해당 [실패]가 [성공]적인 패턴에 안착할 수 있다. 요컨대 실패할지언정 더욱 수습 가능한 유효한 실패에의 [지속]적 시도가 해당 구조를 구성하는 단위(거래 관계의 다발)에의 정의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개별 요소 간의 관계들은 다시 무수한 거래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거래 다발은 ‘단위’를 이룬다. 그리하여 ‘단위’는 인위적이며 가상적이고 [지속] 위에서 전략적이도록 강제된다. 하나의 단위에서 벌어지는 거래‘들’은 일관된 종류의 ‘일’을 기준으로 구분된 결과이므로, 그게 몇 개든 거래의 다발로서의 단위 작업은 일관된 종류의 한 가지씩의 일만을 하고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단위 내부에서 같은 거래를 몇 번 하든 얼마나 다른 거래들로부터의 조합이 몇 번이 이루어지든, 하나의 단위에서는 한 가지 종류의 [단위] ‘일’만 ‘작동’해야 한다는 ‘원칙’이 역추론되고 또 (운영 환경에서는 그토록 자주) 강제되곤 한다.


여기 이 작동 단위는 사건을 구성하고, 또 거래들로 구성된다. 회고적으로 특정 사건을 재구성하며 가정되곤 하는 저 단위 ‘작동’은, 또 다른 문제 상황을 마주했을 때 해당 문제를 작동 단위로 해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작동’ 단위의 레퍼런스다. 그와 같은 유효성의 작동 단위는, 그저 쪼갤 수 없는 최소한의 타고난 단위 따위가 아니라, 작동 양상의 일관성을 토대로 분석과 수정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수립된 인위적이고 의도된 거래의 각각 [유일]하고 ‘필연적인’ 다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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