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두께

by 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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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달린다.

아킬레우스는 거북을 추격한다.


1) 거북이 있던 자리에 아킬레우스가 도달한다.

2) 거북은 그동안 조금이라도 나아갔다.

3) 그러므로 아킬레우스가 더 빠르지만 거북에게 도달하지는 못했다.


1-1) 다시, 거북이 있던 자리에 아킬레우스가 도달한다.

2-1) 다시, 거북은 그동안 조금이라도 나아갔다.

3-1) 다시, 그러므로 아킬레우스가 더 빠르지만 거북에게 도달하지는 못했다.


1-2) 다시, […]

2-2) 다시, […]

3-2) 다시, […]


[…]


위와 같이 언어에 거북과 아킬레우스를 1대 1로 대응시키다 보면, 아킬레우스가 거북보다 아무리 빨라도 아킬레우스는 거북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추월할 수도 없다. 이것이 이른바 그 유명한 제논의 역설이다.


허나, <현실>의 아킬레우스는 거북을 <반드시> 따라잡을 것이다.


따라서, 제논의 역설에서 이동하는 거북의 위치는 일종의 점근선인데, 아킬레우스는 무한히 가까워질 수만 있을 뿐 도달할 수는 없다.


마치 도달할 수 있으리라 매혹하지만 도달할 순 없는 자아상의 나약한 한낱 허한 존재론인가? 그럴 리가. 거북의 존재와 아킬레우스의 존재가 특정되는 것은 <기본>이다. 1에 2를 더하려면 1이 무슨 <존재>인지 정의 내리는 건 이미 간주되었어야 할 (<발달>의) <전제>이자 <기본>이다. <관계>는 관계의 사슬 이전에 관계의 <객체>를 전제한다. 그러므로 <이미> 지나왔어야 한다(그런데 객체를 전제한다는 건 <주체>도 전제한다는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다시, 제논의 역설에서 이동하는 거북의 위치는 일종의 점근선인데, 아킬레우스는 무한히 가까워질 수만 있을 뿐 도달할 수는 없다.


허나, <현실>의 아킬레우스는 거북을 <반드시> 따라잡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논의 역설>에서 불가능한 것이 <현실>에선 가능하다. 제논의 역설보다야 현실이 더 무궁무진해서인가? 그럴 리가. 요는, 논리의 한계가 아니라 언어의 한계다.


제논의 역설은 [시간이 무한히 쪼개질 수 있다]고 전제한다. 그런데 언어는 시간이 무한히 쪼개질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심지어 쪼갠다는 건 <양>적 개념이다. 우리는 이러한 <언어의 한계> 위에서만 <개념>을 전달할 수 있다.


다시, 제논의 역설은 [시간이 무한히 쪼개질 수 있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시간이 무한히 쪼개질 수 있다면(이 대목에서의 시간을 혹자가 크로노스라 부르건 아이온이라 부르건, 이 대목은 언어의 [외양] 따위보다 이해를 겨눈다) 아킬레우스는 거북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 허나, <현실>의 아킬레우스는 거북을 <반드시> 따라잡을 것이다. 따라서 이는, 그 자체로 [경험적 시간이 무한히 쪼개질 수 없다]는 반증이다. 고로, 시간을 쪼개고 쪼개다 보면 나눠질 수 없는 단위가 있다는 반증이다. 고로, 시간에는 [두께]가 있다는 반증이다.


여기서 우리는 언어의 한계와 또 마주친다. 두께란 <양>적 개념인 까닭이다. 또한 두께란 <시각>적 개념인데, <시간>은 시각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누적된 맥락 위에서 두께는 시간을 수식할 수 있다. 맥락이 단어에 개념을 누적해서 전달한다. 물론 개념은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맥락은 독립적이지 않다. 맥락은 누적되는 것이다.


쪼개질 수 없는 경험적 시간은 시간의 <두께>로도 표현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두께>라는 부정확한 은유로 <쪼개질 수 없는 경험적 시간>이라는 개념에 도달하기도 하는 것이다. 시간의 두께라는 <표현>은 맥락 의존적일 수 있지만, 쪼개질 수 없는 경험적 시간이라는 <개념>은 독립적이어야만 한다. <표현>은 언어의 한계 내에 있고, <개념>은 이해의 한계 내에 있다.


이를테면, 주어(형식)와 술어(내용)로 문장을 구성할 수밖에 없는 건 언어의 한계이며, 따라서 <표현>의 한계다. 고로 혹자가, 주체(형식)와 대상 객체(내용)의 구분이 전적으로 표현의 방식일 뿐 그러한 구분의 절대성은 없다는 걸 <논증>하였다면, 그는 <개념>을 전달하고자 한 셈이다. 그러나 그가 전달하고자 한 개념도 표현의 한계이자 <언어>의 한계 위에서 작동하였을 터다. 그러므로, 그가 논증한 바와 달리 그의 문장이 주체와 대상 객체로 구성되었다고 해서 <모순>일 리 없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언어(표현)와 개념을 <혼미하게> 혼동하지 않도록, 또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여 표현에 그 <원한>을 투사(투사는 현실 인식(론)에 실패하고자 하는 방어 기제 중 하나다)하여 퇴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비로소 <개념>에 도달하고자 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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