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루틴을 따라 살면, 딱히 탐구와 관찰이 지속적으로 필요하지는 않다. 부모의 삶 또한 그렇지 않을까. 그녀는 잠든 소년을 응시한다. 불을 끄자 아이의 얼굴이 어둠에 스며든다. 닫힌 방문을 뒤로 한 채, 아들을 등진 서연은 복도를 가만히 걸어 지나친다. 아울러 뇌리에는 문턱 너머의 육성이 스친다. ‘다녀왔습니다.’ 적당히 예의 바른 목청에 아래로, 어미의 눈길은 아들의 겉옷 주머니에 머물곤 한다. 언젠가 거기서 피 묻은 동물의 살덩이가 발견되곤 했다.
원칙을 만들어 놓는 건, 새로운 탐구를 위해 일단의 가설을 설정해 두는 작업과 비슷하다. 도무지 파악되지 않는 일을 위해, 어느 정도 조사한 이전의 일을 고정해 두는 정도겠지.
“고양이”
복도가 끝났다. 자기도 몰래 튀어나온 말에 남편의 목소리가 뒤따른다.
“키우려고?”
소파는 넓고 거실은 더 넓다. TV 반대편에 자리 잡고, 푹신한 팔걸이를 밴 그이가 느슨하게 풀린 눈으로 던진 의문이다. 답이 없자, 다른 말을 발음한다.
“당신, 그런 거 전에는 별로 안 좋아했잖아.”
“그래도, 애들한테 좋지 않을까 해서.”
그제야 고개를 돌린다.
“애들만 좋아하면, 나는 찬성.”
서연은 부엌에 선 채 묵묵부답이다. 과연 괜찮을까? 이따금 발견되는 행동이 더 심해지는 게 아닐까? 마음 둘 곳이 없어서 그렇다면 말이 될까? 그녀가 손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성호가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르게 한다.
“왜 그래?”
그녀가 부엌을 통과한다. 혹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아들이 특이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았고, 나름대로 잘 키웠다 여겼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적당히 친한 친구 이야기를 알맞게 끊곤 하던 대화의 분량이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던가.
그이 옆자리에 앉았다가 팔짱을 끼면서 일어난다. 몸을 주방으로 되돌려 발을 디딘다. 성호가 그녀를 살피다, TV의 전원을 잠시 껐다 켠다. 아내가 불쑥 목청을 내민다.
“역시 키우지 않는 게 좋을까?”
텔레비전을 다시 끈다.
“애들한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냐?”
“그렇긴 하지.”
서연은 부엌을 슬쩍 바라본다.
“당신, 뭐 먹을래?”
“라면있어?”
“출근할 때 얼굴이 붓지 않을까?”
“그럼 어떡하지?”
그녀가 단호하게 말한다.
“역시 키우지 않는 게 좋겠어.”
“고양이 말이야?”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덧붙인다.
“물어보자니까.”
“뭐 먹는다고?”
남편이 한숨을 쉰다.
“아냐, 먼저 가서 잘게.”
“그래, 자다 배고프면 말하고.”
그가 서연에게 손을 내저으며 거실에 딱 붙은 안방으로 발을 들이민다. 승진 시험이 이번 주라고 했나. 그녀가 거실과 복도, 부엌의 불을 끄자 집 전체가 어둠 속에 잠긴다. 팔짱을 낀 채로 막내 아이의 방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복도를 서성이다 거실 소파에 앉는다.